brunch

다시 뵙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쩌다 한 번은 이루어지는 성공적인 이별

by 시에

다시 만나지 말자는 인사를 하고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보통은 정말 다시 보지 않기 위해 웃는다. 앞으로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네가 존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서로 크게 웃으면서 안녕할 수 있다면 참 다행이다.

251021_병원_01_02.png #Midjourney



안녕하세요. 어디가 어떻게

처음, 서로 밝게 인사를 하며 마주 앉았다. 어색하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다소 건조하게 몇 가지 할 일을 전달받고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었지. 차가운 기계 앞에서 낯선 이가 시키는 대로 누웠다 앉았다 한참을 휩쓸려 다녔다. 두 번째 만났다. 다행히 웃었다. 서로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는 웃음.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사항을 안내하고 반 년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251021_병원_02_04.png #Midjourney



4년이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여전히 같은 자리, 같은 의자. 등받이가 없어서 더 불안한 의자에 앉아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음 약속을 잡는 엔딩. 내게는 까다로운 검사 때문에 일정을 지키는 게 쉽지 않았다. 콜센터의 긴 대기를 버텨야 하는 줄 알면서도, 변경하기 일쑤였다. 선생님의 스케줄과 내 스케줄이 겹치는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연차를 내고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선생님은 처음으로 말했다. "다음에도 이렇다면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다시 뵙지 않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오늘이다. 쌍방이 이별을 말하면서 기쁜 경우가 얼마나 될까. 확실히 병원은 그에 포함되겠다. 선생님은 늘 내게 애매하다고 말했다. 결론이 나길 바라면서도, 부정적인 답을 듣고 싶지는 않았던 순간들. 오늘도 여전히 애매하다고 했다. "다만 지금처럼 추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251021_병원_02_02.png #Midjourney


이제 다들 그러하듯, 위중한 것은 없지만 모른 체 하지는 않아야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한동안은 극심한 두통 때문에 여러 과를 전전하며 원인을 찾았다. 긴 터널을 견딘 끝에 나름대로 타협하며 지낸다. 고맙게도 이번에 다른 하나를 또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네. 꼭 다시 뵙지 않기를 바랍니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나도 크게 웃었다. 더 이상 예약 안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간호사 선생님과도 짧은 인사를 나눴다. 매번 나를 긴장시키던 입구의 혈압계도 이제 안녕.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251021_병원_03.png #Midjourney





누구나 그렇겠지만 기억해야 하는 몇 가지 수치가 있다. 물론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한 '제로'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의무'적으로 병원에 가는 일이 줄었다는 건 꽤 기쁜 일이다. 괜찮아. 꼭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게 아냐. 어제 무너졌어도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연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