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영호 Jan 12. 2024

편집자가 생각하는 "변화를 향한 발걸음"

- 일본의 어느 출판사에 다니는 편집자의 이야기 

책이 팔리지 않는다. 


지금 출판업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잡지가 하나둘씩 폐간되고, 책 판매량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안녕하세요. 실용서 편집자 다카하시 픽토라고 합니다. 

제가 편집하고 있는 실용서 역시 위기가 닥쳐오고 있고, 서점에서는 실용서가 놓여있는 선반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 서적의 진열대. 예전에는 야구, 축구 등 종목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스포츠'로 묶여 있습니다. 바둑, 장기, 마작으로 나뉘어 있던 선반도 '게임'으로 하나로 합쳐졌다. 


그런 와중에 최근 만난 한 편집자는 "영업에서 '신간이 부진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매일매일 신간을 기획하는 편집자에게는 뼈아픈 말이 아닐 수 없다.


책이 안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도 작년(2023년)을 돌아보면 중쇄한 책이 그 전년(2022년)보다 줄었습니다.

책이 안 팔린다는 것을 실감하는 한 해였습니다. 


신간이 안 팔리는 것은 축소되는 출판 시장 때문일까,

책의 내용인가, 기획 콘셉트인가. 편집자의 기획력이 떨어지고 있는 걸까. 변화된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예전에 케하쿠 씨가 <출판 편집의 '팔리는 감각이 미쳐가고 있다'는 문제>에서 출판업계의 변화를 분석하셨는데, 저도 편집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케하쿠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편집자의 기획이 '변화된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편집자가 기획을 마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한 가지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의 일, 조정이 많아서...? 


제가 생각해 본 것은 편집자의 업무 환경입니다.

편집자 업무의 밸런스가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편집자의 업무는 크게 '기획', '편집 실무', '조정'의 세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아래 그림과 같이 조정 업무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기획', '편집실무', '조정'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제 경우입니다. 출판사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편집 프로인지, 프리랜서인지, 입장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기획

사람 만나기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근거를 수집한다

기획서 작성

프레젠테이션하기 


- 편집 실무

구성하기

문장, 비주얼 디렉션

사람과 물건의 수배 


- 조정

사내 업무 (예산서, 사양서, 계약서 작성)

사내 확인(기획, 제목, 디자인)

홍보(신문, TV, 디지털)

이벤트 기획, 운영(서점 전개 강화)

스케줄 조정, 트러블 대응 


여기서 느끼는 것은...

조정 업무가 많잖아...?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편집 일을 한 지 20년 정도 됐는데, 최근 5년, 10년 정도 편집자의 업무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이렇게 달라진, 편집 업무


우선 기획을 진행할 때, 책 제작 중, 출판 후의 사내 업무가 늘어났다.

하나의 기획에 대해 기획회의 검토 횟수가 늘어났고, 제목이나 디자인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회사의 판단을 듣고, 문제가 발생하면 '미루지 않는' 출판 일정(이것도 힘들지만...) 전에 일정을 조정하고 돌아간다. 


각자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지만, 다양한 의견들이 들어가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사내의 인간관계와 관련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일을 추진하는 정치력이 요구된다. 


이렇게 된 것은 출판사가 '책이 팔리지 않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출판물 하나하나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팔리는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견제 기관이 생기게 된 거죠. 


저는 편집자의 '조정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내 점검을 간소화하기 위해 책 제작은 편집에 맡긴다는 사내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 등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지면 편집자(편집부)에게 맡기는 등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정'은 사람에게 맡긴다.

제작 중에도, 출판 후에도 책의 내용이나 콘셉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편집자이기 때문에, 결국 편집 담당자에게 일이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저도 모르게 혼자 하게 되는데, 제작은 현장 스태프에게 맡기고, 판매(홍보)는 영업에 맡기는 식으로 하지 않으면 정작 중요한 기획이나 편집 실무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내 서류 간소화, 사내 확인 체계의 간소화도 필요합니다.(관리직인 저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고, 최근 기획서 포맷을 업데이트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출판 계약서를 디지털화하고 싶다)


기획 시간을 늘리자


사실 '팔리는 기획을 만들려면'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큰 주제라 천천히 생각해 보고 싶지만, 우선 할 수 있는 일로 기획으로 연결되는 시간, 인풋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생각하는 시간만으로는 좋은 기획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제 상사는 항상 '편집자는 인풋 70%, 아웃풋 30%'라고 말씀하십니다. 인풋을 하려면 먼저 사람을 만나는 것,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현장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 업무적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람과 서로 안부를 묻는다. "요즘 주목하고 있는 것/사람은 무엇인가?" 등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이벤트에 초대하면 가급적 거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서 체험하는 것이 세상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조정의 시간을 줄이고, 인풋의 시간을 만들고, 변화에 대응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변화의 첫걸음입니다.


서서히 조정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기획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초청을 받아 달리기 대회에 나간 것, 프로기사의 타이틀전을 직접 관람한 것, 한겨울에 합숙을 한 것 등이 소중한 현장 경험이었다. 이 경험들이 그대로 기획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각각 형태를 바꿔서 기획으로 이어졌어요. 올해 실용서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아직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 같아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현 상황을 직시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반드시 좋은 출판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 인상깊은 내용이 많은 다카하시 픽토의 포스팅을 간략하게 번역한 꼭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 서점업계의 반전을 만든  반스앤노블의 행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