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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영호 Dec 16. 2024

종이책 독서와 텍스트 이해력의 관계

​- 류영호 | 월간 국회도서관, 출판가 길라잡이, 2024년 10월호

2023년 12월 스페인 발렌시아 대학교에서 종이책을 읽으면 전자책을 읽을 때보다 텍스트 이해력이 6~8배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총 45만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주도한 교육심리학과의 크리스티나 바르가스 교수와 라디사오 살메론 교수는 “SNS와 인터넷 기사 읽기 등 대부분의 디지털 독서 습관이 텍스트 이해와 최소한의 연관성을 보였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디지털 독서에서도 재미보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 읽는 것이 텍스트 이해력에 훨씬 더 긍정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즉, 두 연구자는 디지털 화면과 콘텐츠를 읽는 것은 재미와 학습의 구분 없이 종이책 독서보다 이해력이 낮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15세 청소년이 실시한 독해 시험에서 종이책을 가장 자주 읽는다고 답한 청소년은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전혀 읽지 않는다고 답한 청소년보다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비슷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도 종이책을 읽는 학생들은 PISA(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에서 무려 49점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약 2.5년분의 학습량과 같다. 이에 비해 디지털 기기에서 책을 더 자주 읽는 경향이 있는 학생들은 거의 읽지 않는 학생들보다 15점만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1년분의 학습량과도 차이가 없었다. 



종이책이 텍스트 이해력에 도움이 되는 이유


2018년 교육연구리뷰(Educational Research Review)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종이책을 읽을 때 이해력이 더 좋은 세 가지 이유를 발표했다. 

첫째, 종이책은 이해에 더 좋은 시간 프레임을 제공한다. 종이책 읽기의 장점은 자기 주도적 읽기에 비해 시간 제약이 있는 독서에서 더 두드러졌다. 시간 제약을 두고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독서는 시험공부, 업무용 조사, 의학, 정신 또는 사회 문제에 대한 정보 찾기 등이 대표적이다. 종이책은 산만함과 인지적 과부하를 제한하고, 유형성과 공간 인식을 제공한다. 이러한 유형의 시간 제약을 둔 상황에서도 텍스트 이해에 더 적합하다. 전자책을 읽을 때 자유로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면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실시간으로 나오는 알림과 팝업 광고는 독자를 독서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러한 방해 요소는 일시적일지라도 텍스트 이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둘째, 종이책은 읽을 때 주의가 산만해지기 어렵다. 종이책은 웹사이트의 유혹에 넘어가기 어렵고 두뇌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콘텐츠에서 주의를 분산시키기도 어렵다. 전자책은 사용자가 작업을 전환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전자책 읽기 자체가 덜 철저하다. 미국 산호세 대학교의 도서관 및 정보 과학 분야의 지밍 리우 교수는 “화면 기반 독서 행동은 탐색 및 스캔, 키워드 발견, 일회성 읽기, 비선형적 읽기, 선택적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특징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셋째, 종이책은 정보성 글을 더 쉽게 소화할 수 있게 해준다. 텍스트의 장르는 종이책을 읽느냐 전자책을 읽느냐에 따라 이해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연구에서는 읽기 방식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이해력 수준을 비교했다. 참가자들은 내레이션만 있는 책보다 내러티브(서사)가 있는 정보성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았다. 이 연구에서는 내러티브의 장르적 특성에 따른 이해도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텍스트를 인식하는 우리의 뇌와 능동적인 독서


텍스트의 물리적 특성은 뇌가 정보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6년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대학교의 독서과학 분야 앤 망겐 교수는 “종이책과 종이 재질은 개별적인 텍스트에 명백한 물성을 부여하는 반면, 전자책은 유형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만지고, 잡고, 탐색하는 방식이 다르다. 터치스크린의 촉각적 피드백은 종이책과 다르며, 이러한 상호작용의 의미는 경험적으로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실험심리학 및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물체 조작은 조작된 물체에 대한 일관된 정신적 표상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공간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읽기뿐만 아니라 쓰기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종이책을 만지고, 페이지를 넘기고, 종이에 표시하는 것은 뇌가 텍스트의 내용을 정신적으로 표현하는 데 유익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후에 나오고 있는 여러 경험적 조사 결과들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2013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The Reading Brain in the Digital Age(디지털 시대의 독서 두뇌)>라는 기사에서는 “뇌가 단어를 물리적 세계의 실체적인 부분으로 인식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독서는 청각 언어, 시각 및 운동 협업을 다루는 뇌의 여러 영역이 필요하며, 뇌는 단어를 물체로 인식한다.”라고 했다. 과학 작가 산드라 애커먼의 <뇌의 발견(Discovering the Brain)>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뇌 스캔을 통해 사람이 단어를 처리할 때 주로 뇌의 시각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책을 읽는 것도 신체적 활동과 유사하며 독자의 시선에 따라 앞뒤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즉, 정적인 독서 활동은 뇌의 여러 부분을 자극하면서 동적인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에른스트 로스코프는 “학술적 증거와 일화적 경험 모두 사람들이 읽은 특정 정보를 찾으려 할 때, 오른쪽 페이지 상단의 리머릭(limerick, 18세기 초 영국에서 등장한 5행 형태의 운문)과 같이 텍스트의 어디에 그 텍스트들이 나타났는지를 종종 기억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즉, 종이책 읽기를 통해 학습된 기억은 종이에 펼쳐진 위치 정보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종이책을 읽는 질감과 집중력 높은 경험은 전자책 읽기가 넘어서기 어려운 장벽이다. 상대적으로 전자책은 더욱 빠른 접속과 다양한 멀티미디어 연결이라는 장점이 있다.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읽는 데는 종이와 잉크가 여전히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 세대에게 텍스트가 무언가를 읽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세대의 지식문화를 습득하는 환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의 독서에 가장 중요한 점은 종이와 비종이(스크린)으로 구별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친 독서가 아닌, 혼합된 방식으로 독자의 상황이나 책의 속성에 맞춰서 균형감과 몰입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론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독서 역량을 독자 스스로 갖추는 시간과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Playful reading on paper helps understanding more than if it is done through digital media, Scientific Culture and Innovation Unit, 2023.12.14.

Paper books linked to stronger readers in an international study, The Hechinger Report, 2022.07.25.

The Reading Brain in the Digital Age: The Science of Paper versus Screens, Scientific American, 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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