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국회도서관, 2025년 11월호
디지털 환경의 급속한 확산은 이러한 전통적 독서 활동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SNS 피드, 짧고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는 독자의 주의를 분절시키며, 연속적인 독서 경험을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서 독서는 더 이상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상적 습관이 아니라, 의도적인 시간 관리와 자기 통제가 요구되는 행위가 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습관 차원에서 위기라는 의미로 그치지 않는다.
독서 인구의 감소, 평균 독서량의 감소,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증가 등으로 이어지며, 출판 산업 전반에 구조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아가 독서는 여가와 학습, 교양의 기본 활동에서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위기 상황은 새로운 실험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자들은 혼자서는 지키기 어려운 독서 습관을 공동의 규칙과 사회적 구조 속에서 되살리는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타인과의 동시 몰입을 통해 독서를 지속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독서를 문화 이벤트로 만든 ‘리딩 리듬스’
2021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리딩 리듬스(Reading Rhythms)는 독서 문화 실험의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에는 몇 명의 청년들이 옥상에 모여 각자 책을 읽던 작은 모임이었으나, ‘리딩 파티(Reading Party)’라는 이름으로 정례화되면서 점차 규모가 커졌다. 이후 브랜드화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도시로 확산했고, 지금까지 20여 개 도시에서 300회 이상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누적 참가자는 2만 5천 명이 넘는다.
리딩 리듬스의 운영 방식은 참가자들이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모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최 측은 타이머를 설정해 보통 45분에서 1시간 정도를 독서 시간으로 지정하고, 세션이 끝나면 약 10~15분 동안 가볍게 대화를 나눈다. 이 과정을 두세 차례 반복하면서 2시간 쯤 지나면 마무리되고, 토론이나 감상 발표도 강제되지 않는다.
리딩 리듬스는 장소 활용에서도 차별화된다. 옥상, 바, 미술관, 레스토랑, 공연장 등 전통적으로 독서와 거리가 먼 공간을 정해서 독서 경험을 새로운 문화 이벤트로 재구성한다. 뉴욕공공도서관(NYPL)은 리딩 리듬스와 협력하여 브롱크스, 맨해튼, 스태튼아일랜드 등에서 무료 리딩 파티를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공공기관이 민간 주도의 독서 실험을 수용해 지역 공동체의 참여를 확대한 사례로 평가된다.
리딩 리듬스의 확산은 반가운 일이지만 과제도 있다. 장소 대관 비용과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유료 티켓 판매나 굿즈 제작, 브랜드 협업이 늘어나면서 상업성이 강조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본래의 독서 경험이 뒷전에 밀린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따라서 공공성과 상업성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향후 리딩 리듬스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느슨한 연결과 포용성으로 성장한 ‘사일런트 북클럽’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사일런트 북클럽(Silent Book Club)의 창립자는 와인바에서 친구와 함께 각자 책을 읽던 경험을 발전시켜 이를 정례화했고, 2015년 공식 조직으로 출범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는 전 세계 60개 국가에서 2천 개의 챕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규모와 확산성 면에서 독서 커뮤니티 중 널리 알려진 사례 중 하나다.
사일런트 북클럽이 확산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포용성과 낮은 진입 장벽이다. 어떤 책을 읽든 상관없고, 발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향적인 독자나 바쁜 생활 속에서 가볍게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강제 없는 공동체라는 특성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사회적 고립과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부담 없는 연결을 원했고, 사일런트 북클럽은 이를 충족시키며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사일런트 북클럽은 독서 자체에 초점을 두고, 참여 조건이 간단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다양한 도시와 국가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강제성이 없는 구조와 높은 접근성은 글로벌 확산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현대 독자들이 요구하는 유연한 독서 문화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그러나 모임의 성격상 심화한 토론이나 지식 교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모임의 질은 장소와 운영자의 역량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짧은 집중과 성과 공유로 확산하고 있는 ‘리딩 스프린트’
리딩 스프린트(Reading Sprints)는 짧고 집중된 독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독서 습관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모델이다. 운동의 ‘스프린트’ 개념에서 착안한 방식으로, 속도보다는 집중력과 독서 리듬 형성을 목표로 한다. 보통 5~15분 단위로 정해진 시간을 설정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한 책을 읽게 하며, 이후에는 요약, 예측, 저자의 문체 분석과 같은 간단한 사고 활동을 덧붙인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학생들은 점차 독서 지구력을 기르고, 완독 성취감을 통해 독서 동기를 유지할 수 있다.
교실 수업뿐만 아니라 온라인 환경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시간 기록 도구를 활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운영할 수 있으며, 교사는 학생 수준과 필요에 맞추어 시간을 조정하거나 활동 방식을 변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읽은 양이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의 이해와 몰입이다. 따라서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자기 성장을 중심으로 운영할 때 효과가 크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학생들의 집중력이 점차 분절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리딩 스프린트는 단순한 독서 훈련을 넘어 ‘몰입 경험’을 회복하는 장치로 의미가 있다. 짧지만 의도된 시간, 선택의 자유, 그리고 작은 성취의 축적이 결국 지속적인 독서 문화를 만드는 힘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경험으로 전환이 필요한 독서 문화
미국의 독서 커뮤니티 사례는 한국 출판계와 독서 생태계에도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산업적 차원에서 보면, 리딩 리듬스 모델은 대형서점이나 출판사가 체험 중심의 마케팅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독서 행위를 단순한 구매나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경험으로 확장함으로써, 특히 20~30대 독자들을 서점과 출판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사일런트 북클럽이 보여준 느슨하고 포용적인 네트워크 모델은 특정 도서 판매에 국한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독자 커뮤니티 구축에 적합하다. 또한 리딩 스프린트는 온라인 기반 확산력이 크기 때문에 출판사와 플랫폼이 이를 접목해 신간 홍보나 저자 참여 이벤트 등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설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공공과 교육의 영역에서도 적용 가능성이 크다. 공공도서관은 리딩 리듬스와 유사한 무료 리딩 파티를 통해 청년층과 지역 주민을 끌어들이며 커뮤니티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학교 도서관은 리딩 스프린트를 활용해 아침 독서나 수업 전후 시간을 구조화함으로써 학생들의 문해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방의 작은 도서관이나 독립 서점은 사일런트 북클럽식 모임을 운영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독서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다. 이들 모델이 제시하는 핵심은 독서를 단순한 개인의 습관에서 사회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한국 출판계가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한다면, 독서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 류영호
[참고자료]
- Why thousands are turning up for mass reading parties, Famous Campaigns,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