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에 배가 한번 출항하여 돌아오면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엄청난 수익의 이면에는 높은 리스크가 있었다. 출항한 배가 폭풍우를 만나 돌아오지 못하면 투자한 돈은 전액 손실이기에 범선을 출항시킬 수 있는 능력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한대 두대 계속하여 출항을 하다 보니 무사히 돌아올 확률이 70% 정도 되는 걸 경험적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배 한번 출항으로 성공적인 귀환 시 300%의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10대를 배를 출항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7대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계산이 서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얻는 수익률은 110%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10대를 출항시킬 재무적인 능력이 없고 1대만 출항시킬 능력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대만 출항시켰다가 30%의 침몰확률에 걸려 배가 돌아오지 못하면 심각한 재산상의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첫번째로 나온 대안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1대의 배를 출항시키수 있는 자산가 10명을 모아 각각의 출항에 10%씩 출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침몰위험을 10대에 분산시킬 수가 있다. 확률적으로 10대중 7대가 무사 귀환을 할 것이고 나는 투자 원금대비 110%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출항 횟수 적은 대항해시대 초기에 자주 이용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출항 횟수가 빈번해지자 침몰위험을 인수하는 자본가가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수의 법칙을 적용하여 위험을 인수하고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보험업의 출현인 것이다. 10대의 배가 출항하고 침몰확률이 30% 일 때 보험업자는 배를 출항시키는 자로부터 각각 총 투자비용의 30%를 보험료로 받는다. 배를 출항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10억이라면 각각 3억씩 받아 30억을 받는다. 대수의 법칙에 의해 3대의 배가 귀환하지 못하면 3명에게 받은 돈 30억으로 10억씩 각각 나누어준다. 무사귀환한 7명은 30억씩 벌었을 것이고 이 중에서 보험료로 3억을 주었으니 27억이 수익이 되고 침몰한 배의 주인은 10억 비용을 전액 보전받게 된다. 물론 보험업자가 이렇게 장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각의 선주들에게 3억+@를 거두었을 것이고 @만큼 보험업자의 수익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보험업자를 통해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보다는 상호분할투자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보다 이익일 것이다. 보험업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 편리하고 보편화되려면 배의 출항빈도가 더 많아져야 하고 침몰확률도 좀 더 내려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위험을 분산함으로써 또는 위험을 전가함으로써 대항해시대에 사업리스크를 축소할 수 있었기에 서양의 제국주의는 더 활발하게 세계로 뻗어갔을 것이다. 이것이 보험의 순기능이다. 보험이 있었기에 산업발달이 더 가속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보험은 매우 합리적으로 고안된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이렇게 시작한 보험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갔고 산업의 발전과 고도화에 힘입어 그 규모가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파고들 정도로 확대된다.
보험에는 손해보험이 있고 생명보험이 있다. 손해보험은 손해위험을 커버하는 것이고 생명보험은 인간의 생명을 보험대상으로 한다. 생명보험의 기능은 나쁘지 않다. 만약 한 가계의 가장이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 대부분 그 가계는 재무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가장의 조기사망에 대비한 생명보험에 가입을 해두었다면 받는 보험금으로 다소나마 가정의 재무적인 안정성을 지켜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생명보험의 역할이다.
건강보험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살던 농촌에서는 건강보험을 가입되어 있는 농부들은 없었기에, 만약 누군가 중병에 걸리게 되면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소를 팔고 논밭을 팔아야 했다. 설사 병이 치유가 된다 해도 그 집안은 엄청난 병원비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제일 부러웠던 사람이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건강보험은 국가가 관장하고 있는데 지금은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국가에서 관장하는 건강보험과는 달리 생명보험은 개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보험이다. 하지만 나는 생명보험 중의 하나인 정기보험을 건강보험처럼 국가가 일률적으로 가입하여 관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강보험은 과도한 의료비로 인하여 한 가정이 재무적으로 파탄나는 경우를 막기 위하여 도입되었고 과도한 보험료가 청구되는 경우를 막기 위하여 민간보험회사가 아닌 국가기관이 관리를 맡게 되었을 것이다. 생명보험을 가입하는 이유는 가장이 경제적 활동을 할 시기에 예상치 못한 조기사망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가계의 재무적 파탄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질병으로 인한 가정의 재무적 파탄만큼 가장의 조기사망으로 인한 가정의 재무적 파탄도 못지않게 큰 것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저렴한 비용으로 국가가 관리하고 생명보험(정기보험)은 민간보험에게 맡기는 것은 어울리지가 않는다. 건강보험처럼 한 가정에서 필수적으로 가입되어 있어야 할 보험인 생명보험(정기보험)도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건강보험과 정기보험은 가장의 조기사망위험과 가족 구성원의 질병위험으로부터 가정의 안위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것이다. 이러한 정기보험은 민간보험회사들이 상품을 제조 판매하고 있는데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식회사가 담당하기에 그 보험료가 과도하게 높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따라서 국민의 정년이 되는 시점인 60세까지 사망사고 위험을 담보하는 정기보험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무가입 및 그 관리를 국가기관인 건강보험공단에서 담당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전 국민들에게 혜택이 갈 것이다. 그리고 사망보험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망보험금도 일정기간 동안 월급처럼 남은 가족들에게 지급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그 취지에 더 부합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에는 국가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 있고 민간보험회사가 담당할 영역이 있다. 국민들이 기본적인 경제생활을 보장하는 영역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것이고 나머지는 민간의 영역이다. 기본적인 경제생활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가장의 조기사망위험과 가족의 상해 질병위험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장의 조기사망위험과 가족의 상해질병위험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다. 우리는 상해질병위험은 건강보험으로 국가가 관리하지만 조기사망위험은 민간보험회사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국가가 관리함이 맞고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하려고 하면 아마도 민간보험회사에서 난리법석을 떨 것이다. 그들의 이익이 줄기 때문이다. 단번에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단계적으로라도 꼭 추진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이 생로병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병들고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경제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병들고 죽는 것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창창한 나이에 병들고 죽는 것은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 후에 병들고 죽는 것은 과도하게 겁을 낼 이유는 없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늙어서도 여전히 질병과 죽음에 대하여 겁을 내고 발달된 의학의 도움을 받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다양한 보험을 가입하고 그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이는 개인의 생각과 선택의 문제이니 다른 사람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생로병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그것은 위험이 아니고 회피대상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더라도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생로병사를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가족은 대가족체제였고 마을이 씨족사회와 비슷했다. 누군가 조기 사망이나 질병에 걸려도 다른 가족이 대신해 줄 수 있었고, 마을에서 부조를 하여 견디어 나갈 수가 있었다. 옛날의 상호부조는 오늘날 보험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르다. 소가족체제이고 나의 가정에 위난이 생겨도 옆집에서 부조하거나 그 부담을 공동으로 떠안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경제활동시기 내 조기사망 질병에 대해서는 보험을 통하여 위험을 대비하는 해야만 한다. 그 외 은퇴 후에 생겨나는 (생)로병사는 대비하는 위험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가지고 있기에 내가 가입한 보험은 종신보험 하나뿐이다. 사실 보험에 대한 지식이 좀 더 있었더라면 나는 60세까지 보장하는 정기보험에 가입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집안에서 내 앞으로 실손보험을 가입해 논 적이 있었다. 그때 당장 해지하라고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매달 내는 보험료로 운동을 하거나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건강관리비용으로 쓰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내가 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이 별 무리 없이 치료할 수 있다면 치료를 당연히 받겠지만 치료가 장기간 소요되고 완치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나는 치료 없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는 것도 얘기했다. 늙어가면서 병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걸 고쳐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훼손할 것이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삶을 지속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의 자존심만 비참해질 뿐일 것이다.
보험에 든다고 걸릴 병이 안 걸리고 걸린 병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보험에 드는 이유는 그 병을 치료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이다.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자금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생긴 병이 치료된다는 보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하면 병에 걸리더라도 보험금으로 치료를 받아 정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대부분 그렇지 않다. 쉬운 병은 적은 비용으로 치료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겠지만 어려운 병은 치료받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많고, 돈만 쓰고 각종 수술 등으로 몸이 망가져 퇴원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지 못한다. 돈 들여 치료받아 살아남아도 정상적인 삶이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여 병이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다.
예전에 '로마인이야기' 책을 읽을 때 인상깊게 보았던 내용이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자기 힘으로 운신하지 못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음을 선택하였다.] 우리는 어찌 보면 의미 없을 하루하루의 삶에 너무 연연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피할 수도 없고 숨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늙음 병듬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생명체의 기본적인 본능이기에 인정하지만 그것을 보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자. 보험회사의 상술에 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