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경제학의 3주체론

by 꺽정

경제학에서는 경제의 주체를 3개로 단순화하여 이론을 펼쳐나간다. 이 경제의 3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이다. 가계는 노동력을 공급하는 주체로 보고, 기업은 자본과 기술 그리고 가계가 공급하는 노동력을 결합하여 생산을 하고 이를 가계 또는 정부에 판매를 하고 이윤을 얻는 주체로 본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제활동을 조세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하여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경제학에서 가계의 역할은 단순하다. 노동력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 임금으로 받은 돈으로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제주체에 포함되지만, 경제주체라기 보다는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으면 수입이 끊기는 노동자 집단 정도로 취급 받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기업이 생산한 것을 소비해 주는 집단으로 정의되는 것도 약간 미묘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가계는 경제의 주체라기 보다는 기업의 생산 활동을 보조한다는 느낌이다. 반면에 기업은 경제의 핵심적인 축으로 표현된다. 기업이 없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경제학은 기업을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기업이 하는 소비는 소비라고 하지 않고 특별하게 투자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를 정도이다. 정부의 역할은 조세 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하여 경기를 조정하는 역할인데, 정부 또한 경제학에서는 기업을 보조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기업이 불경기로 힘든 시기일 때 재정정책을 또는 금융정책을 사용하여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론을 전개하지만, 기업이 벌어드린 돈을 조세정책으로 회수하여 부의 재분배를 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잘 논하지 않는다. 결국 정부도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보조적인 주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경제의 3주체론은 자본가인 기업가를 위하여 만들어진 이론이다. 기업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다른 주체는 자신들을 보조하는 역할로 축소한다. 자본가의 기업활동이 원활해야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3주체론의 기본 가정과 각 주체의 역할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화한 것도 이론으로서 기업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듯하다.


가계를 노동력만 공급하는 역할로 한정한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로 보아야 한다. 가계는 노동력만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가장 근원적이 주체이다. 기업이라는 것은 자본의 한 형태로 가계의 소유물이다. 따라서 경제주체로서 기업을 따로 떼어 낼 필요가 없다. 기업을 소유한 것은 가계이기 때문이다. 가계가 소유한 기업을 따로 떼어내어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주체라 내세우는 것은 중복이다. 결론적으로 경제의 3주체은 실제로는 2주체인 셈이다.


모든 가계가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력만을 보유하고 있는 가계가 있을 것이고 1억 2억정도의 자본을 보유한 평범한 가계, 재벌과 같이 대규모의 자본을 보유한 가계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계를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본이 없는 가계' 와 '자본이 있는 가계'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제의 3 주체를 '자본이 없는 가계' 와 ' 자본이 있는 가계' 그리고 정부로 놓고 경제학 이론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본이 있는 가계를 따로 떼어 놓고 이를 기업을 이름을 바꾸고 가계 기업 정부를 주체로 하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왜 그렇게 했을까는 추측할 수 있다. 기득권층인 자본가(자본이 있는 가계)들은 무산계급인 노동력만 보유한 대부분의 가계를 그들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과 같이 특별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본을 보유한 그들은 무산계급인 가계를 자신들의 사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싼값에 공급하는 하위계급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귀족이고 그들은 농노계급에 불과하다는 뿌리깊은 신분제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다.


자본을 보유한 가계와 자본이 없는 가계로 구분하여 경제학이론을 전개하면 자본가에게는 달갑지 않은 이론들이 생겨날 수가 있다. 같은 가계인데 왜 대다수의 가계는 자본이 없고 자본이 있는 가계에게 자기의 노동력을 저임금으로 착취당해야 하는가? 자본을 가진 가계는 계속하여 이익을 쌓아가지만 자본이 없는 가계는 계속하여 노예처럼 자본을 가진 가계에 종속되어 살아가는가? 가계는 경제적으로 보다 평등해져야 하고 균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등의 질문들이 생겨날 것이고 경제이론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가 있다. 이는 자본가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력만을 공급할 수 있는 가계'를 학문적으로 자신들과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래서 자본을 가진 자신들을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만 가진 그들과 구별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본생각을 토대로 경제학 이론을 만들었으니 경제학이 경세제민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경제학 이론은 기업가가 가계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생산활동을 하여 자본을 쌓아가도록 하는 이론적 배경을 축적하기 위하여 자본가들의 논리를 합리화하는 학문인데 경제주체를 '자본이 없는 가계' 와 '자본이 있는 가계' 그리고 정부로 하면 출발부터 스텝이 꼬이는 것이다.


만약에 경제주체를 가계(자본이 없는 가계, 자본이 있는 가계)와 정부라는 2주체로 보고 이론을 전개하면 경제학의 출발점이 확 달라진다. 3주체에서는 기업인 자본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부를 창출하고 가계에 소득을 제공한다는 식의 기본적인 경제이론이 출발한다. 따라서 가계와 정부는 기업가의 생산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라는 논리로 발전한다. 지금의 경제학 이론처럼 말이다. 하지만 2주체론으로 출발하면 이 논리의 전개가 무너진다.


2주체에서는 가계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부를 창출한다. 노동력만 가지고 있는 가계는 노동력을 제공하여 경제성장에 기여를 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갈 것이다. 자본을 보유한 가계는 기업을 운영하여 경제성장에 기여를 하고 그 대가로 이익을 가져갈 것이다. 가계는 보유자본이 다소에 따라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게 경제활동을 하고 그 대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3주체론에서 가계는 기업에 종속적인 존재였지만 2주체론에서는 각각 처한 상황이 다른 가계라 하더라도 경제성장에 기여를 하는 주도적인 주체로 바뀌게 된다. 출발점이 다른 관계로 가계간에 소득편차는 불가피할 것이고 이런 소득편차가 같은 가계 안에서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겨날 것이고, 경제학은 이러한 질문을 답하기 위한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이 드디어 경세제민하는 학문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3주체론의 핵심은 기업을 핵심으로 보는 것이고 2주체론은 가계를 핵심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경제학은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학문이다. 이것이 지금의 경제학의 한계이다. 이러한 경제학을 2주체론으로 바꾸어 가계를 중심으로 두고 이론을 전개할 수는 없는 걸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가에게는 권력의 원천인 돈이 있지만 다수의 일반 가계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보유한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와 맞서려면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하고 굳건한 상호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투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자유로와 지거나 현명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들의 문맹률을 낮추려고 할 때 기존 기득권층이 결사 반대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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