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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 Nov 09. 2021

빌 게이츠가 농장을 사모은다고?

초연결 말고 그냥 연결되고 싶어서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가 열성적으로 농장을 사모은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IT 주식이라든가, 말만 들어도 미래적인 산업에 투자할 거 같은 그가, 여기저기 소똥이 뒹굴고 감자가 자라는 농지를 부지런히 사모은답니다. 대체 왜일까요? 우리가 모르는 부의 비밀이 숨어있는건 아닌지 속내가 궁금해집니다.


궁금할  직접 확인해봐야죠. 황금빛 들녘이 눈부신 어느 가을 주말, 가까운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고 조금 달렸을 뿐인데, 도로 옆으론 빽빽하던 집들이 줄어들고 어느새 탁트인 광야가 나타났습니다. 시야가 트이자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무겁게 압박하던 도시의 대기에서 해방된 자유가 느껴졌어요.


바람소리 잔잔한 계곡을 따라 사과나무가 옹기종기 늘어선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쨍한 파란 하늘 아래, 옅은 가을 건초가 바람결에 실려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키가 너무 크지 않은 사과나무들이 마치 옛 초등학교 조회시간에 줄선 아이들처럼 정겹게 서있었어요. 그 아래로는 흙묻은 소박한 사과들이 뒹굴었고요.

허리를 굽혀 사과 하나를 집었습니다.

조그매보이는 크기와 다르게 묵직한 무게감이 손을 타고 전해졌습니다. 향긋한 사과 향내도 코끝에 와닿았습니다. 아직 노란빛이 남아있는 껍질 위로 빨간 물이 살짝 번진 사과는 꼭 어린 아기처럼 앙증맞고 이뻤습니다.


마트에서 맨날 보고 먹는 사과인데, 반짝반짝 윤기나는 진열대에는 없던 충만감이 전해졌습니다. 땅에 떨어진 상품성 없는 사과지만, 대지에 박힌 원석을 쥔 것 마냥 귀한 실감이 있었지요. 그 느낌이 퍽 좋아서 쉽게 손에서 사과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산자락 아래에는 키 큰 해바라기들이 서있었습니다. 가을꽃도 눈부셨고요. 조랑말, 염소, 양들이 건초더미에서 매매- 울었어요. 풀잎 사이로 꿀벌과 풀벌레들이 윙윙 부산하게 날아다니고, 흙길에는 아이들이 까르르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꼬마들을 따라 저도 한줌 모래를 쥐어보았어요. 따뜻했습니다. 동심처럼 아련했고요. 그냥 흙을 만졌을 뿐인데, 마음이 따듯하게 녹아내렸습니다. 지구와 깊게 맞닿은 느낌이랄까요.


우주가 고심해서 함께 만든 타임테이블에 맞춰 딸기가 자라고, 호박이 여물고, 사과나무가 크고. 각기 다른 작물들이 무대 위의 등장인물처럼 들어왔다 나갔다 흐름을 타며 생동하는  눈에 보였습니다.

이런, 쓰다보니 글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되더라고요. 농장에  제가.


탄성이 절로 나오는 광활한 캐년, 압도적인 바위 절벽,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운 사막도 아닌데.  멋진 대자연에서 느끼지 못한 손에 잡히는 생기, 사람의 기척, 작고 평온한 세상의 감촉이 전해졌습니다. 대면접촉이 사라지고 물리적으로 고립된 시대에  손으로 직접 만지고, 맛보고, 느끼는 감각의 향연이 농장에 있더라고요.


 게이츠는  그렇게 농장을 사들이냐는 질문에 답했다고 합니다. 미래 식량 위기에 대비할  있는 대체식량과 종자 연구, 지속 가능한 바이오연료 개발에 있어 농장의 가치는 갈수록 중요하다고요.


또, 경제전문지들은 앞다퉈 부연설명도 합니다. 사실 몰라서 그렇지, 농지의 투자 수익률이 쏠쏠하다고요. 지난 30년간 농지 투자의 수익률은 미국의 주식과 국채보다도 높고, 변동성도 낮았답니다. 게다가 갈수록 줄어드는 한정 자산이기 때문에 미국의 거부들이 앞다투어 사모은다고 해요.


그래, 그랬군요.

그들은 그들의 이유가 있겠죠.


저는 이제 저의 이유가 있어서 농장에 갑니다. 잠꼬대처럼 위에서 말한 '실감' '충만감' 같은거요. 살아있지만 살아있음이 무뎌진 언택트의 세상에서. 오감이 폭발하고, 세상과 연결된 충만감을 주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실감이 있는 농장이 저는 요즘 좋습니다. 초연결 말고 그냥 연결되고 싶은가 봅니다.


다만 농장을  능력이 없으니, 이번 주말에도 운동화를 꺼내 신고 토마토를 따고 당근을 캐러 가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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