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고민
7:25분 교무실 도착.
불을 켜고, 차단기를 올리고 컴퓨터를 켠다.
아메리카노가 간절하지만, 두통 때문에 얼그레이 티백 2개를 뜨거운 물을 조금 넣고, 두유를 부어서 1분 10초. 전자레인지로 데운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점심까지 배가 고프지 않은데, 출근만 하면 배고 고프다. 아직 업무 시작도 전인데, 일터에 도착하자마자 당이 떨어지는 신기한 경험.
어제 퇴근하면서 보지 못한 학습자료를 아침에 보고 왔다.
3종류의 학습지를 40분 정도 수정하고 나니 8:30분.
1층 인쇄실에 등사를 맡기러 간다.
그리고 바로 5층 우리 반 조회하러.
학급 단톡에는 특별한 규정은 두지 않는다. 딱 한 명, 고슴도치가 가끔 톡방에 '개소리'같은 욕설을 하기는 할 때만 한 마디씩 한다. 중3이고, 우리 반, 특히 바른 아이들이라 최대한 제재는 안 하려 한다.
고슴도치가 오늘 핸드폰을 안 가져왔다고 한다. (가방을 뒤질 수도 없고) 3번이나 물어봤는데 정말 안 가져왔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는데... 고슴도치랑 친한 부반장이 고슴도치가 핸드폰을 안 가져올 리 없다며, 본인이 대신 가방에서 찾아낸다.
불신의 감정이 올라온다. 이새...
내 눈치를 보는 고슴도치. 웬만해서는 화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협박, 강제, 화는 자발성을 불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마다 나도 사람인지라 화가 난다. 이 아이는 막 나가거나, 친구들이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이 아이와 친한 우리 반 아이들이 되려 '교복 입고 와야 하는 거 아냐? 수업시간에 그만 좀 자'라고 얘기를 하니 그나마 다행.
학생부에서 지도도 받아봤지만 잘 변하지는 않는다. 학교 상담도 거부하고.
1교시, 2반 영어수업
평소와 다르게 민지(가명)가 잘 참여를 안 한다. 민서의 수준은 make, middle school뜻을 모르고, 파닉스도 안되어 있다. 못하지만 모둠활동에는 참여를 했는데, 오늘은 엎드려있다.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역시나 화를 내지는 않는다. 나름 고충이 있겠지. 짐작이지만 못하는데 계속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본인도 힘들 것 같다.
2교시 공강 -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구글슬라이드를 수정한다. 학생참여형 수업을 해서, 강의식 설명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간단히 10분 미만으로 문법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얘들아, 지금 설명은 샘의 지식이야. 너희 것이 아니야.. 블라블라"
초등학교 수준부터 고등 모고를 푸는 아이들이 한 반에,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영어수업을 듣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로서 안타까움과 (탈출)을 꿈꾼다.
진짜 학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계속 스스로 의문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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