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계절을 좋아해?
사계절을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인생이다. 요즘은 비교적 봄과 가을이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길지만 그래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계절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했고 변덕도 심해 늘 좋아하는 계절이 달라졌다. 어린 시절에는 봄을 좋아했다. 날이 따듯해지고 꽃이 피는 봄이면 이웃집 담벼락 너머로 흐드러지게 핀 보랏빛 라일락이 좋았다.
“엄마, 예전 동네에 살 때 라일락 예쁘게 피던 집 생각나?”
“알지~ 보라색 라일락도 예쁘고 그 앞집에는 목련이 너무 예쁘게 폈지.”
어린 시절 추억 속 동네의 봄은 참 예뻤지만, 자라며 꽃가루 알레르기 덕분에 좋아하는 계절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민들레 홀씨가 날리는 계절이면 나의 호흡기는 맥을 못 춘다.
확실한 색깔이 있는 여름/겨울보다는 여름과 겨울 그 사이 어디쯤인 간절기가 더 매력적이다. 봄이 괴로워질 때 즈음 가을이 좋아졌다.
“나의 계절이 드디어 왔다!”
가을은 나의 퍼스널컬러라서 더욱 애착이 가는 계절이기도 하고 왠지 가을 옷은 멋들어진 느낌이 강해 좋아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버건디색 립스틱을 바르면 왠지 무드 있는 분위기로 변신하는 느낌이랄까?
적당히 춥고 해는 맑고 코 끝은 시린 11월이 가장 좋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아우터를 챙겨 입게 되는 계절. 무엇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기에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여름을 좋아하세요?
“너는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둘 다 별로지만... 차라리 겨울!”
매우 덥고 매우 추운 극단의 계절 여름과 겨울. 너무 색깔이 뚜렷해 두 계절 모두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하지 않고 겨울을 고른 이유는 많다.
여름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내가 있고,
여름철 덥고 습해 높은 불쾌지수로 사는 내가 있고,
여름철 출퇴근 대중교통은 최악의 지옥철이 되고,
장마철 마르지 않는 빨래와 우중충한 날씨가 싫고,
여름은 왠지 다이어트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왠지 옷들이 가벼워 잘 차려입은 느낌을 주지 않고,
여름쯤 되면 달리다 지쳐 번아웃이 오는 시기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이유들로 여름을 싫어했다.
그런데 요즘 여름이 좋아지는 이유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변덕이 심해서일까?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
시끄럽게만 생각하던 매미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푸릇푸릇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상쾌한 느낌이 든다.
절반을 지나왔으니 휴가를 갈까? 하는 마음에 설렌다.
애정하는 복숭아와 초당 옥수수의 계절.
여름이 좋아지는 지점들이 이렇게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여름을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내게는 여전히 “좋다”라고 답변할 수 없는 계절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싫은 계절이 아니라는 것.
좋아하는 계절을 생각하면서 나의 호불호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인가 호불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었다.
싫어했던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좋아했던 음식을 멀리하게 되고,
즐겨 듣던 음악의 장르가 바뀌고,
싫어하는 인물이 최애 캐릭터가 되기도 하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내게 여름이 좋아하는 계절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여름을 좋아하세요?”
“좋다.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친구들 글을 하나씩 열어보며 알아챈 사실 한 가지.
사계절을 인생에 빗대어 생각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나이가 초여름을 맞이한 게 아닐까? 그래서 요즘 초여름이 좋은 걸까?’
가벼이 여긴 주제였는데 또 생각이 많아졌다.
리솜 :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 내가 초여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러나 초여름 뺀 여름은 너무나 싫어!!!
여름이 싫은 이유 대공감! 이쯤에서 초여름을 뺀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지도 궁금.... 난 살면서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 딱 한 명 봤어. 다음에 그 사람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언젠가 된다면 여름이 왜 좋은지 물어봐야지.
나방 : 나도 생각해 보니까 초여름이 좋은 거였나 봐! 여름은 다 싫었었는데 초여름이 좋아진 걸 보면 나중엔 늦여름도 좋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