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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Jun 08. 2021

오버나잇 오트밀 (Overnight Oats)

오트밀을 포기한 당신을 위하여


우리나라의 부대찌개나 꿀꿀이죽이 그렇듯이 어느 나라든 가난의 상징으로 통하는 음식이 있다. 일본에는 2차대전 종전 직후 오키나와에서 먹은 모빌 덴뿌라라는 음식이 있다고 한다. 덴뿌라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튀김 음식을 말하는데, 엔진 오일이나 자동차 윤활유같은 폐기름을 요리 기름으로 썼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가볍게는 배탈로 끝날 수 있었지만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배고픔에 허덕였는지 짐작할 만 하다. 프랑스 부야베스(Bouillabaisse: 마르세유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생선 스튜) 또한 그렇다. 지금은 랑구스틴(Langoustine: 노르웨이 랍스터)같은호화로운 재료를 넣어 요리하기도 하는 등 크게 변모되었지만 원래는 시장에서 팔 수 없는 잡어로 어부들이 소박하게 끓여먹던 수프에서 유래하였다. 


그 중 영국에서 가난한 농민 서민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먹던 음식이 있는데, 바로 오트밀에 물을 넣어 죽처럼 끓인 포리지(Porridge)다. 오트(Oat)는 귀리를 뜻하는데 시중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오트밀은 귀리를 도정한 후 남은 알맹이만 오븐에서 쪄 납작하게 눌러 말린 식재료를 말한다. 밥과 국, 반찬으로 한국식 아침식사를 하며 유년기를 보낸 나에게 사실 오트밀에는 왠지모를 로맨스가 있었다. 해외여행 가서 호텔 조식에나 나올법한 메뉴라고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호텔을 숱하게 들락날락하던 승무원 시절에도 아침 뷔페에 오트밀이 준비된 장면이나 오트밀을 먹는 사람들을 본 기억은 없다. 너무나 서민적인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 먹던- 식재료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맛있는 메뉴에 정신이 팔린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여러가지 브랜드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퀘이커(Quaker)사의 오트밀이다. 오트밀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조차 아마 이 브랜드를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특히 저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퀘이커 교 아저씨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한 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데, 여느 네덜란드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어로는 Havermout라고 불리는 오트밀 


내가 오트밀을 처음 먹어본 것은 무려 5년은 더 지난 이야기다. 당시의 남자친구가 부기장이었는데 비행 가기 전 시간이 촉박할때면 식사 대신 이 퀘이커에서 나온 인스턴트 오트밀에 우유를 부어 전자렌지에 돌려 먹고 출근하곤 했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한 숟갈 떠먹어보았는데 왠걸, 먹어본 적은 없지만 골판지를 물에 담가 며칠 불리면 날 것 같은 맛이었다. 게다가 우유때문에 약간 느끼한 맛까지 추가해서. 어떻게 이런 걸 먹을 수가 있지? 그 후로 오트밀은 내게 자발적인 금기의 식사가 되었고, 다시 도전해 볼 생각 또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신 슈퍼푸드가 잔뜩 들어간 그린 스무디를 마시거나 일반 요거트 혹은 스키어(Skyr: 유청을 걸러내 꾸덕하지만 부드러운 맛의 아이슬란딕 스타일 요거트)로 다양한 요거트 볼을 만들어 먹는 것이 지난 몇 년 간 나의 아침 고정 메뉴였다. 


그러던 중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주 전쯤 슈퍼에 갔다가 홀린 듯 이 오트밀 박스를 집어들었다. 아마도 코로나로 지루해진 일상에 색다른 아침식사로 변화를 주고 싶었을수도 있고,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큰 축복중의 하나인 망각의 축복이 내게 갑작스런 마법을 행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전에 먹었던 것처럼 따뜻한 죽 같은 포리지를 만드는 순간 다시 한 번 오트밀과 최소 몇 년은 이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나는 구글에 오트밀 조리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비주얼을 뽐내는 오버나잇 오트밀(Overnight Oats). 


오버나잇 오트밀은 말 그대로 전날 밤 오트밀에 물이나 우유를 넣어 불려두고 다음날 아침 부드러워졌을 때 섞어 먹는 것을 말한다. 기본 뼈대는 이것이 전부지만 각자의 기호와 상상력을 더해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오트밀 준비하기 


일단 나는 오트밀을 불릴 때 소 우유 대신 귀리 우유를 사용한다. 카푸치노와 라떼를 즐기지만 사실 커피에도 소 우유를 넣지 않고 코코넛이나 아몬드, 귀리 우유 등 우유 대체품을 사용한지 오래 되었다. 20대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소 우유 특유의 느끼함이 없고 속도 편하기 때문이다. 또 치아씨드를 한 티스푼정도 넣어주는데, 밤새 오트밀과 함께 불면서 젤리같은 식감을 더하고 먹을때는 씨가 오독오독 씹는 맛을 더해주기도 힌다.  


토핑으로는 사과를 잘라 넣고 시나몬 가루를 뿌리는 방법이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로 보여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트밀 자체가 워낙 부드러운 맛이라 산도가 높은 과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유럽의 사과는 한국처럼 달지 않고 훨씬 단단면서 새콤한 편이라 더욱 겉도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토핑은 달콤한 바나나와 블루베리다. 바나나를 잘라 넣고 블루베리를 곁들인 후 호두와 캐슈넛을 가운데에 얹는다. 꿀을 뿌리고 시나몬 가루를 톡톡 떨어뜨려주면 완성이다. 이 외에도 아몬드 우유로 오트밀을 불리고 그 위에 말린 코코넛칩과 바나나로 토핑을 하는 방법 혹은 피넛버터에 달지 않은 잼을 얹고 베리류 과일을 섞어 먹는 방법도 있다. 어떤 재료를 넣어도 좋지만, 이처럼 이미 잘 알려진 맛의 조합을 응용하면 큰 실패없이 창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생각보다 포만감이 엄청나서 아침에 먹고 나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밥 생각이 나지 않는데다가 하루종일 햇빛이 뜨거운 유럽의 여름을 보내기에 더없이 완벽한 식사라 매일 이렇게 먹고 있다. 그 단순하면서도 건강하고 싱그러운 맛에 매료되어 매일 쓰는 감사일기에 꼭 한번씩 언급하는 정도라, 내가 대체 언제부터 오트밀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나 하고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역시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엇이든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  



출처: 

http://www.thedefinitearticle.org/cuisine/dont-mention-the-war-but-lets-talk-about-the-food

https://en.wikipedia.org/wiki/Bouillabai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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