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존재를 지우기도 하였으니, 너란 존재가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로 불릴 때, 이름이 온갖 애칭과 호칭으로 둘러싸여 시나브로 파묻힌 이름이 수년 또는 수십 년간 나타나지 않기도 하였다.
그렇게 오래 잠든 이름이 불릴 때, 낯선 소리에 눈을 뜨고 반응한 몸짓이 잃어버린 빛깔과 향기를 들어내니 이윽고 너에게 어여쁘다 말한다. 이름은 너의 소리가 아니라 각성이다. 이름은 너의 호명이 아니라 주술이다.
연인을 이름으로 사랑하고 이름으로 소유하며 이름으로 보존하는 것을 발터 벤야민은 플라토닉 러브라고 표현했다. 그리하여 단테도 어느 이름을 사랑한 바 있으니 그가 쓴 '신곡'이란 베아트리체라는 이름 뒤편에 서린 아우라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하니 너의 이름을 들으라. 너의 몸짓이 기억하는 빛깔과 향기와 율려에 귀를 기울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