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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지영 Jul 26. 2021

인형놀이에 빠진 엄마들: 엄지의 인형의 집 탈출기

인형에서 여왕으로 거듭난 소녀

어른이 되어 찬찬히 다시 읽어 본 <엄지 아가씨(엄지 공주)>에는 '세 명의 엄마상'이 등장했다.


첫 번째 엄마, 엄지 소녀를 탄생시킨 부인.
두 번째 엄마, 엄지 소녀를 납치하여 아들과 강제로 결혼시키려고 했던 두꺼비 엄마.
세 번째 엄마, 갈 곳 없던 엄지 소녀를 거둬주고, 두더지 신랑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던 들쥐 아줌마.


이 세 엄마들의 공통점은, 엄지 소녀를 '나름의 방식'으로 엄청나게 잘 보살펴 주었다는 것이다.

엄지 소녀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엄지 소녀를 보살핀다.

마치 인형놀이에 사용하는 장난감 '인형'을 보살피듯!


#첫 번째 엄마, '작은 아이' 갖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서만 엄지 소녀가 살아가게 만들었다. 왜 이 엄마는 '작은 아이'를 원했나. 엄지 손가락만큼 작은 아이.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곳에, 어디든 갖다 넣어 놓을 수 있는 사이즈의 아이. 인형의 집에 넣어 두고 내 마음대로 움직을 수 있는 인형 같은 아이!


#두 번째 엄마, 엄지 소녀의 공포심을 이용하여 늪지대에 가두어 두고, 자기 아들과 억지로 결혼시켜 살게 할 '예쁜 신방'을 꾸며준다. 공포로 상대방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두고서는, '너에게 정말 예쁜 집을 만들어 줄게, 너에게 정말 예쁜 것을 선물해 줄게, 너도 좋지?'하는, 소름끼치는 두꺼비 엄마.


#세 번째 엄마, '오갈데 없는 너를 내가 거두어 주었다, 너는 나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나는 너를 참 예뻐한다, 그런데, 너 내 말 안들으면 알지? 두더지랑 결혼하지 않으면 너 다치게 한다! 내 말 안들으면 내 집에서 못산다!'라며 협박하는 들쥐 아줌마.


이 세 엄마들의 핵심적인 공통점,


엄지 소녀가 원하는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에 엄지 소녀가 영영 머물기를 바랬다는 것.
엄지 소녀를 자신들이 만든 인형의 집에 가두어 두려고 했다는 것.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엄지 공주>는,


1) '인형의 집'에 어울리는 '인형놀이감'으로 딱 좋게 태어난 '엄지 소녀'가,


2) 자신에게 강력한 '세상의 법칙'으로 다가오는 '인형의 집 주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3) 그 '세상의 법칙'이 마냥 의지하고 따르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벗어나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4) 인형의 집을 떠나 '나만의 새로운 세상의 법칙'을 실현할 수 있는 '여왕'의 존재로 거듭난다는 서사의 흐름을 갖는다.


그러니까, 한 소녀가 인형의 집 속 '인형'같은 존재에서, 인형의 집 바깥 세계-새로운 세계 속 '여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1. 강력한 세상의 법칙이 제공하는 포근하고 안락한 품, 첫 번째 인형의 집


한 부인이 있었다. 늘 아이를 갖고 싶어했으나 막상 키울 자신은 없었다.

아이가 생기면 나타날 변화들, 자신이 감당해야할 새로운 변화들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귀여운 아이의 웃음소리와 자신을 향한 사랑의 제스쳐, 스킨십 등은 너무 갖고 싶었다.


나를 향해 항상 웃어주고, 투정 따위는 부릴줄 모르는,

오로지 애교와 재롱만을 부릴 수 있는 귀여운 아이가,

키우기 너무나 편한, 작고 작은 아이가 갖고 싶었다.


부인은 마녀에게 돈을 주고, '인형같은 아이'를 얻을 수 있는 보리 씨앗을 얻었다.

부인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마녀의 말대로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얼마 후 화분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더니, 꽃 속에서 인형같은 아이가 나왔다.

부인은 아이를 '엄지'라고 불렀다.


부인은 신이 나서 인형의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락한 곳이었다.

엄지는 그 속에서 안전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엄지는 부인이 원하던 것 처럼, 한번도 울지도 않고, 그 어떤 말썽도 피우지 않고,

오로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거나 환한 미소만을 지으며 하루를 보냈다.


'이런 아이라면 10명도 키우겠는걸!'

부인은 드디어 자신이 딱 원하던 그런 아이를 얻었다며, 매일 밤 기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인의 집 창문 너머로 늘 호시탐탐 그 인형의 집을 넘보던 두꺼비가 엄지를 납치했다.

엄지는 두꺼비가 자신의 몸을 잡아 당길 때, 끌려가지 않기 위해 땅을 움켜 잡았다.

두꺼비에게 끌려가는 순간, 엄지의 손에는 땅 속에 심어져 있던 보리 씨앗이 들려 있었다.



#2. 낯선 이성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두 번째 인형의 집


엄지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꽃 위에 자신이 누워 있었다.


연꽃은 아름다웠으나, 냄새나고 더러운 습지 위에 있었다.

습지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는 엄지를 압도했다.

습지가 내뿜는 공포스러운 공기에 짓눌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뒤, 두꺼비 모자가 나타났다.

두꺼비 엄마는, 엄지가 곧 자신의 아들 두꺼비와 결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 두꺼비는 작고 예쁜 엄지를 보자 너무 기쁜 나머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두꺼비의 이빨 사이에는 초록색 돌멩이가 끼어 있었다.

꿈에 볼까 무서운, 흉측한 모습이었다.


엄마 두꺼비가 신방을 꾸민다며 먼저 가버리자, 아들 두꺼비가 혼자 남았다.

두꺼비의 울퉁불퉁한 커다란 몸뚱이가 금방이라도 엄지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엄지는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두꺼비가 순식간에 풀쩍 뛰어올라 엄지의 몸 위로 올라왔고,

엄지는 온 힘을 다해 두꺼비를 밀쳐내다가 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때 두꺼비의 이빨 사이에 끼어 있던 초록색 돌멩이도 같이 빠졌다.



#3. '내가 떠나면 엄마가 슬퍼할거야'라는 함정, 세 번째 인형의 집


물 속에 빠졌던 엄지는 물고기들의 도움으로 다시 육지로 올라왔다.

혼자 남은 엄지는 무작정 길을 걸었다. 그때는 아직 여름이었다.

날은 점점 추워져서 겨울이 되었다.

엄지는 간신히 옥수수 그루터기 밑에 있는 작은 굴에 사는 들쥐 아줌마의 집에 도착했다.


마음씨 좋은 들쥐 아줌마는 엄지를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다.

엄지는 들쥐 아줌마 덕분에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며, 다시 안전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들쥐 아줌마는 불쌍하고 갈 곳 없는 엄지가 자기말을 잘 따라 두더지와 혼인하여 부자로 잘 살기를 바랬다.

그것만이 엄지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두더지는 엄지와 태생부터 다른 존재였다.

하늘과 꽃, 숲과 나무를 사랑하는 엄지와는 다르게, 두더지는 평생 땅 속에서만 살아왔다.

하늘과 꽃, 숲과 나무를 본적도 없고 사랑하지도 않았다.

엄지는 두더지와 혼인하면 평생 두더지와 함께 어둠 속에 갇혀 살아야 할 판이었다.


바로 그 시기에 엄지는 다 죽어가는 제비 한 마리를 우연히 만났다.

제비는 두더지 집으로 가는 동굴 속 길목에 누워 있었다.

엄지는 제비를 도와주고 싶었다.

자신의 신세도, 동굴 속에 갇혀 날지 못하는 새와 다를 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엄지는 첫 번째 집을 떠나올 때부터 몸 속에 지니고 있었던 '보리 씨앗'을 제비에게 먹였다.

사실 그 보리 씨앗에는 강력한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엄지를 탄생 시킨 생명의 힘이!


그 보리 씨앗을 먹은 제비는 다시 기운을 얻었다.

제비는 은혜를 갚기 위해 엄지에게 같이 떠나자고 하였다.

하지만, 엄지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들쥐 아줌마가 떠올라서 망설였다.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들쥐 아줌마가 굉장히 슬퍼하실거야...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 두더지와의 혼인이 잘못되면 그 피해가 들쥐 아줌마에게 갈지도 몰라... 나 때문에 들쥐 아줌마가 곤란해 질지도 몰라....날 지금까지 돌봐준 분인데, 날 살려준 분인데, 배신할 수가 없어....

엄지는, 계속 들쥐 아줌마 옆에 있다가는, 평생 두더지 굴 속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들쥐 아줌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배신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제비는 혼자 떠났다.



#4. 인형의 집 바깥으로.


한번 흔들린 마음은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제비를 떠나보내고나자, 더더욱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러한 나의 솔직한 심정을 혹시 들쥐 아줌마가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날 그렇게 예뻐하셨는데, 날 그렇게 귀여워하셨는데,

혹시 내 말을 들어주실지도 몰라.


엄지는 들쥐 아줌마에게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죽어도 두더지와는 혼인하기 싫다고..

엄지는 솔직하게 말하면 들쥐 아줌마가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상냥하던 들쥐 아줌마는 순신간에 무섭고 포악한 얼굴로 변하더니,


내가 이제까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내 뜻을 거역하면  넌 무사하지 못할거다!!


라며 엄지를 협박했다.


절망에 빠진 엄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던 엄지는, 막막함이 몰려와 눈물을 흘렸다.


그때, 제비가 나타났다.

엄지가 가진 생명의 힘을 나눠가진 제비가!


이번에 엄지는 주저없이 선택했다.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엄지는 제비의 등에 올라탔다!



#5. 인형의 집에 머물다 벗어나야만 얻을 수 있는 생명의 보물들로.  


제비는 엄지를 숲 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 숲에는 꽃의 천사들이 살고 있었다.

꽃의 천사들은 엄지처럼 꽃 속에서 태어나, 각자의 꽃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꽃들이 다 시들어가고 있었다.  

꽃의 천사들 집이 다 시들시들해진 것이었다.


그것은 꽃의 천사들의 집을 지키고 있던 '생명의 보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꽃의 천사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생명의 보석이 있었는데,

그 보석은 숲을 가로질러 흐르는 냇가 옆 특별한 나무 밑에 숨겨져 있었다.


한 꽃의 천사가 엄지에게 말했다.

"어느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냇가 물이 불어나 숲이 물에 잠긴 적이 있었는데,

어떤 못생긴 두꺼비 녀석이 나무 밑에 숨겨 두었던 생명의 보석을 훔쳐갔어!"


"그 보석은 어떻게 생겼나요?"

"초록색 돌멩이 처럼 생겼단다!"


엄지는 예전에 두꺼비에게서 도망칠 때 같이 물에 빠졌던 초록색 돌멩이가 생각났다.

그 후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었는데, 그 돌멩이를 꺼내 꽃의 천사들에게 보여주었다.


꽃의 천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환호했다.

어떤 꽃의 천사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엄지가 가지고 있던 초록색 돌멩이를 특별한 나무 밑에 다시 묻어두자,

꽃의 천사들 집이 되살아났다.

모든 꽃들이 생기를 되찾고 활짝 피어났다.


"당신은 우리 꽃의 요정들의 집을 되찾아 주었어요! 부디 우리들의 여왕이 되어주세요!"


엄지는 더이상 엄지로 불리지 않았다.

이제 그 숲을 다스리는, 꽃의 여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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