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지영 Aug 09. 2021

<알고 있지만>2, 다음번 섹스는 비겁하지 않을 거야!

'사랑'을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 중 '안전'은 없다

#1. 무도회장 안, 음악이 흐르고, 

    나비와 재언이는 춤을 추고 있다.  


로맨틱 영국 영화 속, 반드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두 남녀가 누구보다 밀착되어 춤을 추는 장면. 


사회적 체면과 예의, 온갖 사회적 규범에 강력하게 얽매여 있는 두 남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에 밀착되어 상대의 체온을, 향기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시간.


<브리저튼> 속 주인공 남녀의 사교춤 장면 
<작은 아씨들> 속 주인공 남녀의 사교춤 장면 


<오만과 편견> 속 남녀의 사교춤 장면 


대표적으로 <브리저튼>, <작은 아씨들>, <오만과 편견> 같은 작품들에서 쉽게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주인공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그리고 자기 자신의 소망도 아직 잘 모를 때, 

상대에 대한 의구심과 경계심을 풀지 않았을 때, 이렇게 가까이 밀착되어 함께 춤을 춘다. 


남녀는 마치 나비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며 춤을 춘다. 

탐색의 시간이다. 나의 소망을, 상대의 소망을. 


이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사회는,

결혼 하지 않은 미혼의 남녀가 절대 '대놓고' 성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다. 


그래서 이 '춤추는 장면'은 너무나 중요하다! 

유일하게 '대놓고' 자신의 성적 바이브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던 공인된 기회,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안전하게' 숨어서 나의 감춰진 욕망을 탐색할 수 있던 기회! 


또 하나 중요한 점, 

음악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누구보다 은밀히, 밀착되어 서로를 탐색하다가도,

음악이 끝나면 두 사람은 완벽한 '남'이 될 수도 있다. 
음악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음악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나비와 재언이는 지금 춤을 추고 있다. 



이 드라마의 90프로 이상은 두 사람 간의 미묘한 신경전, 설레임, 성적 바이브로 꽉 차있다. 잔잔하고 달콤한 음악과 함께.


현재 8회까지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매회, 음악과 함께, 특별한 사건의 진전없이, 두 사람의 탐색전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보이는 나비의 팔랑거림도, 두 사람의 춤을 연상시킨다)


 <알고 있지만>은 두 사람의 '춤추는 장면'에 집중한다. 

아직 음악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안전'하다. 


그러나, 이 음악도 곧 끝이 날 것이다. 


#2. 음악이 끝나갈 즈음,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선택의 시간! 


우리 모두에게는 춤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어느 한 가지 방향으로 얽매이지 않고, 여러 선택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음악은 언젠가는 끝난다. 

어떤 방향이든, 음악이 끝난 후, 무도회장 밖으로 나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제는 정해야 한다.


나비에게 "너 하고 싶은게 뭔데?"라고 묻는 조교 언니 

지난 8회에서, 조교 언니가 나비에게 한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나비가 졸업작품 준비와 교환학생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있는 것 같자, 조교 언니가 강력하게 묻는다. 


너 하고 싶은게 뭔데? ....
붙든 안붙든 니 '의지'가 먼저지! ...
니가 좀 더 좋아하는게 있을 거야

우리 인생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나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난 지금 어디에 나의 의지를 더 쏟을 것인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움직이고 있는가. 


나비는 조교 언니에게 답한다. 

이러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아요"라고.


나비도 안다. 

이 춤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 

언젠가는 나도 나의 의지를 꺼내보이고, 나의 패를 보여야만 한다는 것! 


무섭더라도, 상처받는 것이 두렵더라도, 

내 풀 파워를 언젠가는 꺼내야 한다는 것.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나비와 재언이는 아직 자신들의 의지를 다 쏟고 있지 않다! 

둘다 비겁하긴 마찬가지다. 


"진짜 원하는 것"을 그 누구도 먼저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속 시원하게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다.

나의 패는 감추고, 상대의 패만 살핀다.

상대가 먼저 자기 패를 보여주기만을 기다린다. 

나의 풀 파워를 다하지 않는다. 


재언의 연락의 기다리며, 재언에게 '니 물건 버린다'라는 문자를 남기려고 하는 나비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넌 연락이 없지" 라며, 나비는 재언을 원망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주춤되는 마음은, 

모든 것을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만든다. 


나비도, 재언이도, 아직 '의지'를 꺼내보이지 않았다. 

음악이 흐르니까, 아직 춤을 추는 중이니까.


그러나 춤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음악은 멈춘다. 
그때에도 여전히 나의 의지를 꺼내지 않는다면, 
그때에도 여전히 나의 패를 꺼내지 않는다면,
 그때에도 여전히 아무런 선택없이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남는다면, 
두 사람의 춤은 깊은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나의 마음을 내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의 반응을 통해 바로잡고 싶어한다면, 

그 어떤 것도 바로잡히지 못하고, 둘 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3. 안전하지 않은 무도회장 밖, 그러나.. 

     '사랑'을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 중, '안전'은 없다.

      -원작과 다른 결말로 가는 중, <오만과 편견>으로.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안전'하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음악이 끝나면 위험하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으니. 

그래도, 선택해야 한다. 

'안전'하려고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만과 편견> 속 다씨와 엘리자베스


사랑할 때 빠지기 쉬운 '오만'과 '편견'.

엘리자베스는 '편견'을, 다씨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다. 


"넌 그런 놈이지. 난 너란 종족에 대해 잘 알지. 넌 결국 이렇겠지"라는 편견. 

나비의 독백에서도 항상 나타나는 특징. 재언이에 대한 편견. 


"난 너희보다 한 수 위에 있지. 너희보다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라는 오만. 

재언이의 평상시 대화에서 드러나는 특징. 친구에게 연애 조언을 해줄때 조차, 난 다 안다는 그 오만한 태도.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 엘리자베스와 다씨

<오만과 편견> 속 '엘리자베스'와 '다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 '오만함'을 극복한다. 

그러고나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그것을 상대에게 가감없이 보여준다. 



나비와 재언이도,

 춤추기가 끝나면, 온전히 자신의 소망을 직시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안전하지 않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의지를 보여줄 것인가! 


8회까지 드라마가 이어져오는 동안, 두 사람의 춤추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드라마. 

음악이 끝나가고, 이젠 선택의 시간. 


현재까지 여러 정황들로 보아(나비와 재언이 양쪽 모두의 '성장'을 지지하는 전체적인 기조 속에서),

원작인 웹툰과는 다르게, 새로운 결말이 기대된다. 


그래서 다음번 섹스는, 비겁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직시하고,

그 소망을 진실되게 추구하리라!  

그런 애정씬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인형놀이에 빠진 엄마들: 엄지의 인형의 집 탈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