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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지영 Aug 26. 2021

누구나 자기 몫의 괴로움이 있다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의 무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_'4살 아이 치과 데려가기' 


어린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간다.


이 간단한 문장 속에는 수많은 사건과 감정들이 얽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치과'가 들어가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어린아이를 '치과'에 데리고 간다. 


'치과'라는 말이 주는 공포감은 전시대, 전세대를 불문하고 보편적인 것인가 보다. 

무슨 악의 소굴에라도 들어가듯,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4살 된 딸을 치과에 데려가는 일은, 나에게도 공포다. 

치과 입구에서부터 그 냄새에 질색하는 아이는, 지난번 정기적으로 받는 구강검진 때,

어찌나 몸부림치며 오열했던지, 눈 주위 실핏줄이 다 터졌다. 


눈 주변에 빨간 점 같은 것이 다다다닥 생기자, 자기도 자기 모습을 보며 이상했나 보다.

딸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엄마, 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하물며, 오늘은 '충치 치료'. 두둥.

치과에 가기 전부터 여러 준비를 했다. 


-'선물'로 기분 풀어주기 

1) 어젯밤 미리 주문한 분홍색 챕스틱 주기

2) 약국에서 비타민 사기 


이렇게 딸아이의 환심(?)을 산 후에, 


-'이야기'로 기분 풀어주기 

3) 딸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과 연결 지어, 씩씩함을 고양시키는 이야기 만들기   


간신히 진정하고 오늘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잠시 찾아오지만, 

단두대와 같은 그 치료용 침대에 눕는 순간, 

모든 준비는 허사가 된다....


-'온몸'으로 응원하기

4) 충치 치료 내내 딸아이의 몸을 감싸주며 다리 토닥이기 (아이가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괴로운지, 가장 힘든 순간이다ㅠㅠ)


-다시 한번 '말 격려'와 '선물' 공세 

5) 딸아이의 용맹함 칭송하기 

6) 도깨비 마트 들려 자잘한 장난감 2~3개 사기 


어린아이를 치과에 한번 데리고 갔다 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단계가 필요하다. 


누군가 대신해줄 수만 있다면, 

다음번 딸아이의 치과 방문은 다른 사람이 해주면 좋겠다.

하하하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을 내가 제일 잘 알지....)



내년에 칠순인 우리 아빠는 환갑이 넘은 본인의 남동생을 매주 병원에 데리고 다니셔야 하지.  


어느 집에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하던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에는 너무 심하게 아픈 손가락이 있다. 


몸도 마음도 아픈 삼촌. 

아빠의 남동생.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어느 순간 정신병이 도져 가족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비통함과 고통을 안겨준 사람. 

다른 형제들 모두 삼촌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단다. 

가장 큰형인 우리 아빠만 빼고.


내가 아는 한, 평생 누군가의 짐이 되어 살아온 사람.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는 한 도저히 생존할 수 없었던 사람. 

헌신적이면서, 엄청난 고통을 스스로 감수하는 가족이 없었다면 진작에 객사했을 사람. 


정신병만 있으면 그나마 나은 것일지도.

몸도 엉망이다.  

눈도 잘 안 보이고, 잘 걷지도 못한다. 

수술이란 수술은 다 받은 것 같다. 


평생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살아오던 삼촌은, 

몇 년 전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이후, 

우리 아빠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아빠는, 막 따뜻하고 다정한 타입의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책임감 하나는 엄청나게 강하다. 


몸도 엉망, 정신도 엉망인 남동생의 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이,

이 세상에 자기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삼촌은 주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 

오죽하면 지난달 삼촌이 무릎 수술을 하여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병인이 하루 만에 관둔다고 했을까.

삼촌이 밤새 성가시게 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아빠에게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 수십 통의 메시지를 보낸다. 

"냉장고에 있는 빵 먹어도 되나요?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요?"에서부터, "오늘 빵 사러 나가다 넘어져서 지금 못 일어나요. 틀니가 안 보여요."까지. 


아빠가 전화를 안 받으면 엄마한테.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면 나한테.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내 동생한테.


아빠는 매주 삼촌을 데리고 병원에 가신다. 

정신과에도 가야 하고, 치과에도 가야 하고, 안과에도 가야 하고, 정형외과도 가야 하고... 


한 번 정도는 다른 사람이 대신 가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가.



누구나 자신이 오롯이 감당해야만 하는 괴로움이 있다. 어느 특정 시기, 어느 특정 관계 속에서.



내 딸아이가 치과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도, 

신랑이 장인어른의 다정하지 못함에 상처 받아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도,

지금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내 몫의 괴로움이다. 


누구나, 자기 몫의 괴로움이 있다. 
내 몫이기에, 그 괴로움을 남에게 옮길 수는 없다.

신랑에게, "당신이 좀 아이 치과에 데리고 가라!"라고 할 수도, 

"당신이 직접 장인어른한테 좀 더 다정하게 이야기해달라고 말해라!"라고 할 수도 없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신랑 대신 내가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는 것도 맞고,

아빠로 인해 상처 받은 신랑의 짜증을 나 외에는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맞다. 


삼촌으로 인해 괜히 나에게까지 짜증이 난 아빠에게 나 역시 짜증을 내기보다, 그 기분을 이해하고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빠 옆에서 누구보다 힘들어하는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 반복되는 엄마의 이야기를 또 듣고 또 듣고, 계속 맞장구쳐 주는 것이, 

모두를 괴롭게 하는 삼촌이지만, 그가 보낸 문자에 늘 답장하고 가끔은 먼저 안부를 묻는 것이, 


내 몫인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의 괴로움을 담당하고 있다. 


자기 몫의 괴로움을 감당하는 중에, 

누구라도 어느 순간에는 화가 튀어나오고, 짜증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괴로움이 나의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나의 괴로움을 남에게 옮겨서는 안 된다. 

내 몫의 괴로움을 감당해야 할 때마다,

감당하기 어렵다고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린다면, 

내 몫의 괴로움은 내 몫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리고,


원래 내 것인 것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남에게 돌리고 남 탓만 하다 보면, 

나의 평범한 일상은 분열되고 만다.

내 삶을 살기가 어렵게 된다.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 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모래 위에 쌓아온 것은 아닌지, 

헛된 망상과 후회로 기나긴 밤을 보낸다. 


그래도 이 와중에 내가 잘한 일은, 


1) <오늘 내가 한 중요한 일>을 생각해보며, 그것을 글로 옮겨보기로 작정한 것. 

2) 평범한 일상에서 나의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다짐한 것. 

3) 전체적으로는 슬럼프에 빠져 있어도, 오늘 하루하루는 소중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보기로 한 것!  


지금 이 특정 시기, 특정 관계 속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괴로움을 담담하게 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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