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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지영 May 25. 2023

친한 친구는 계속 바뀐단다

아이에게 전해주는 관계의 비밀1: '먼저 알고 지낸 사이'의 함정

올해 6살이 된 딸아이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이다. 유치원 하원 후에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집에 돌아와도, 밤에 "같이 놀 친구가 없을까" 궁금해하면서, 자고 있을 친구집에 찾아가 보자고 한다. 또래 친구뿐만이 아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 우연히 알게 된 초등학교 언니 오빠들을 길에서, 놀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꼭 큰소리로 부르며 다가가 반드시 아는 척을 하고 만다. 


서로 마주 보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어른들은 이해 못 할 개그 코드를 자기들끼리 공유하며, 잠깐이라도 같이 까불기만 해도 즐거운 것이다. 


유치원 같은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기는 하지만, 특히 더 가깝게 느끼고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아직 '베프' 라거나 '소울메이트' 라거나 '단짝'이라는 개념은 잘 모르지만.


특히 A라는 친구는, 4살 때 어린이집에서 처음 만나, 다른 유치원 친구들보다 알고 지낸 기간이 길다. 나름 '베프'라고 할 수 있다. 5살 때 같이 유치원으로 옮기면서, 내 아이와 A는 일종의 공인된 '베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만났고, '오래' 알았기에, 서로 더 편안해하고, 가까운 것은 당연했다. 베프인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관계를 맺을 때, '먼저 알고 지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먼저 알았기'에 그 관계는 '새로 알게 된 사이',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 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새로 알게 된 사이' 보다는 '먼저 알고 지낸 사이'가 관계에서 더 우위에 있다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6세가 되면서, 내 아이와 A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베프' 같은 모습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단체로 함께 어울리며 놀 때, 내 아이는 내 아이대로, A는 A대로, 각자 다른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그런데 며칠 전, 밤에 자기 전에 아이가 갑자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A가 이제 예전만큼 나에게 오지 않아. 그래서 외로워."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내색 없이 마냥 까불기만 해서, 예전만큼 A와 가깝게 놀지 않는 것에 대해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중요한 순간이다! 아이가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OO야~ 너도 이제 다른 친구들과 더 많이 놀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A가 예전만큼 나와 놀지 않으니 좀 속상해."
"그렇지만, 각자 관심 있는 것이 달라지기도 하고,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도 하고, 예전처럼 놀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내 아이는, 본인 역시도 '변화'의 과정 중에 있으면서, 관계가 변화하고, 마음이 변화하고, 상황이 변화하고, 무엇인가 예전 상태로 남아 있지 않고 자꾸 변화한다는 것이, 못내 서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모양이다. 


그래..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길 바라지만, 결국엔 변하고 마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가슴아픔은..... 그래도 어쩌겠니. 그게 삶인데. 변화를 인정하고 나아가면, 새로운 기쁨이, 새로운 즐거움이 반드시 찾아온단다! 


딸아.. 좋아하는 친구는 계속 바뀔 수 있단다. 친한 친구는 계속 바뀌는 거야. 너도 이제 A말고 다른 친구들과 더 재미나게 놀지 않니? 그리고 어떤 친구는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좋아하다가 싫어질 수도 있고... 나도, 너도, 사람은, 마음은, 늘 변한단다... 삶은 늘 그런 변화의 연속이란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하고, 관계도 변하고. 이 변화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란다.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새로운 즐거움도 생긴단다. 삶이 더 풍성해진단다. 점점 그렇게 자라는 거야!

안 그래도 서글퍼하는 아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서 설명해 본다. 아이가 얼마나 잘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번 씨앗을 뿌렸으니, 다음번에 또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좀 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먼저 안 사이' 만큼 '새로 만난 사이'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지금 내 옆에서 나의 변화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그 인연이 소중하다는 것을. 

언젠가 멀어지게 되더라도, 지금 함께하는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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