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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am Oct 06. 2017

글쓰기 그 어려움에 대하여

게으름에 대한 자기변명

건축과 같은 글쓰기

글쓰기라는 과정은 건축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고들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약 5분 정도 구글링을 해서 습득한 건축시공의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착공 준비: 설계도를 바탕으로 현장을 개설하고, 인력 모집, 행정처리 등 공사 전반의 계획을 수립한다.
2. 가설공사: 공사 현장에 필요한 수도 및 전기 등을 끌어오고, 현장사무실을 설치하여 건축공사를 위한 환경을 구축한다.
3. 토공사: 건축물의 기초 및 지하층의 터파기 및 터를 다진다.
4. 구체 공사: 건축물의 형태로 골조를 만든다. 흔히 말하는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하여 구조를 만드는 과정. 급배수 및 전기통신 등과 같은 설비를 공사도 함께 진행한다.
5. 내외부 마감공사: 방수, 타일, 창호, 페인트칠 등을 마무리한다.
6. 준공 및 건축물 인계: 공사 완료 후 관청의 준공허가를 받은 후 건축주에게 인계한다.
(출처: http://contents.kocw.net/KOCW/document/2014/Chungang/LEEYongkwang/9.pdf)


글쓰기는 건축의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photo by Pixabay.com on pexels.com)


물론 급히 알아본 만큼 세부사항에서 오류가 있겠지만 대략적인 과정은 맞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맞춰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니 꽤 잘 맞는 것 같다. 내가 글쓰기 하는 과정을 위에 맞춰보면 다음과 같다.


1. 착공 준비: 글쓰기 아이디어를 잡는다. 보통 해야 할 일이 밀려있을 때가 잘 된다.
2. 가설공사: 환경을 구축한다. 커피가 필요하며, 메모지, 노트북, 인터넷 연결 등이 필요하다.
3. 토공사: 개략적인 얼개를 잡는다. 주로 뇌리를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 스케치를 바탕으로 하기에 구체적인 개요를 잡기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을 잡는다.
4. 구체 공사: 흐름과 얼개를 바탕으로 글을 써 나간다. 이 과정에서 흐름이 바뀌기도 하지만 보통은 잡아놓은 흐름대로 내용을 '채워간다.'
5. 내외부 마감공사: 맞춤법 검사를 하고, 내용의 앞뒤가 맞는지 점검한다. 글에 맞는 이미지도 삽입한다.
6. 준공 및 건축물 인계: 브런치의 저장버튼을 누른 후 발행할지 말지 고민하다 그냥 발행한다. 세 가지 키워드를 정한다.


위의 과정을 거쳐 브런치 글을 작성하는데 적고 보니, 생각보다 단순하며 간단한 과정이다. 이렇게 쉽게 쓰는 글쓰기는 참으로 맘에 들지 않는다. 윤동주님의 말처럼 쉬이 쓰이는 글만큼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없다. 글이라는 것은 이전에 밝혔듯 소통의 장이고 메시지 전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가 개입하도록 만들고 힘들이는 과정이 녹록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너무 쉽다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이 글쓰기 노동에 쏟는 시간에 대한 정당한 대접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중략...)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作, <쉽게 씌어진 시, 1942>)

건물은 쉽게 만들 수 없다

건물은 쉽게 세울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건축과정도 그러하지만 건축을 하기 위해선 일련의 행정절차가 필요하다. 법적으로 모든 땅은 목적이 있고, 그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 그린벨트로 보호되고, 농경지로 지정되어 있는 땅에 아파트를 세울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을 불법 건축물이라고 하며, 그런 건축물은 법령에 의해 벌금이 부과되고 허물어진다.


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렇게나 쓸 수는 없다. 물론 요즘과 같이 바쁜 와중에 망중한이라고 글쓰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스쳐간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가볍게 스케치한다. '이렇게 이렇게 과정을 거치면 하나의 글이 나오겠군.' 그리고 글쓰기에 착수하고, 글쓰기 건축과정을 거쳐 글을 완성한다. 당연히 글쓰기가 일필휘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내용을 채우고, 표현을 다듬는 과정에서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완성하고 보면 만만한 과정은 아니나, 글쓰기를 너무 쉽게 했다는 자책감은 늘 밀려들어온다.


이렇게 밀려들어온 자책에 의해서 폐기 혹은 미발행한 글이 꽤 된다. <언어학> 매거진의 연작으로 연재하던 <영어로 리딩 하기>도 그렇고, 한국 뉴스 미디어의 변천에 대한 기획물도 있었지만 지금은 미뤄놓은 상태다. 가볍게 쓴다고는 하지만 소요되는 시간은 만만챦으며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려 진지한 태도로 접근하다 보니 써 놓은 글의 질과 양이 마뜩잖은 것도 사실이다.

글쓰는 과정은 고통에 가깝다. (photo by Helloquence on Unsplash)

비단 이러한 불만은 내 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 상에서 소비되고 있는 지면들에는 좋은 글도 있지만 너무 가벼운 글도 많아서 이런 정도의 글이면 없는 것이 낫다 싶은 것들도 더러 있다. 특히나 내 전공분야에 대한 글을 보다 보면 실소가 나올 때도 있으며, 너무 확고하게 찬 신념에서 오류를 전달하고 있는 글을 보고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반박 댓글을 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러한 글에도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배울 면은 있으며, 아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그러한 논쟁의 한가운데 서는 것을 회피하는 성격이다. 나만이라도 오류라는 것을 알면 되지라는 마음가짐 때문인데, 이러한 것에서 오는 자책감은 역시 그 글을 읽은 사람의 수가 꽤 많으며 공유 등을 통해 전달되는 범위가 크다는 것이다. 그게 꼭 나일 필요는 없지만 오류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 말이다.


이런 복잡한 심리 때문인지 브런치의 글을 쉽게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학문적 글쓰기에 가깝게 생각하고 접근하니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무게감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아주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는 셈이다.


가건물과 같은 나의 글쓰기

그렇다. 이것은 나의 게으른 글쓰기에 대한 핑계다. 외려 전공자라면 오류에 대해 득달같이 달려가 반박해야 하며 바로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옳은 것이 전파되도록 해야지, 잘못된 것이 전파되도록 하면 안 된다. 공부 노동자를 자처하고 있는 입장에서 내 전공분야에서 깊이를 추구하는 것은 제1의 의무지만, 연구된 지식의 전파 역시 또 다른 제1의 의무다. 대학에서도 교수 자질을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이 연구와 교육이 아니던가. 바른 지식의 전파에 노력하지 않다 보면 결국 진짜배기들은 쌩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UMC/UW가 노래했던 것처럼. 대중음악이라는 분야는 대중의 판단에 의해서 진짜와 가짜가 판가름 날 수도 있겠지만, 지식이란 그렇지 않다. 격리된 학문의 공간에서는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 것이 대중에게 전달력을 핑계로 퍼져가고 있다면 바로 잡는 것 역시 공부노동자의 할 일이다. 불법 가건물은 철퇴를 맞고 허물어져야 한다.


많은 랩그룹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고 커다란 가짜 목걸이가 은퇴와 함께 버려지고
진짜를 건 사람들은 주말 저녁에 TV에 나와서 랩보다는 개인기에 더 주력해야만 했지
(UMC/UW, <You mean everything to me>


하지만 사실 이러한 가건물 같은 글쓰기는 공부노동의 과정에서 반복되고 있다. 학기별로 페이퍼를 쓰면서, 학회에서 발표할 프로시딩지를 쓰면서, 학술지에 투고할 논문을 쓰면서 가건물 같은 글쓰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공부노동자 역시 양적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양적 평가를 받기 위한 글쓰기는 피할 수가 없다. 석박사 공부과정에서는 과제물로 내기 위한 페이퍼를 쓰기에 허덕이며, 학위를 받고 난 다음에는 교수 임용을 위해 논문을 작성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 과정 중에서 불법 가건물 같은 글쓰기는 낮은 학점 혹은 게재 불가와 같은 평가를 통해 걸러지지만, 가건물 같은 글쓰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자기 영역 내에서 써야 할 글들에 대한 것만으로도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photo by Patrick Perkins on Unsplash)

즉, 가능한 한 빨리 글쓰기를 해야 하는 속도의 시대를 살다 보니 당장 눈앞에 닥친 것들을 완성하는 것에 모든 체력을 소모하고, 대중을 향한 글쓰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대중들의 지적 욕구는 분명히 존재하고, 공부노동자들은 그 욕구를 채워줘야 할 의무가 있는데, 자기 영역 내의 글쓰기에 급급하다 보니 경계 너머 대중을 향한 글쓰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그리고 그 간극을 앞서 말한 오류들이 채우기 시작한다. 여러 사례에서 봤듯 불법은 부지런하고, 이런 오류들도 부지런하다. 대중의 지적 욕구는 오류 가득한 지식들로 가득 차고, 조금의 여유를 낸 공부노동자들은 이런 지식들과 싸워야 하는 부담마저 지게 된다.


건축과는 다른 글쓰기

지금까진 글쓰기 과정을 건축에 비유해 왔다. 건축물을 함부로 세울 수 없듯이 글쓰기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만 뒤집어 보면 글쓰기는 건축과는 다르다. 건축물은 한번 세워지고 나면 그것을 허물고 다시 짓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 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요즘 시대의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웹 시대 이전에야 출판물을 내기 위해서 수많은 회의를 거치고, 진짜 종이에 찍어내는 발행을 해왔지만 요즘 시대는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웹 상에 글을 포스팅할 수 있고 수정도 가능하며 무한의 전파력도 가능하다. 과정이 쉬워진 만큼 예전보다 경쟁 과정도 힘들어지긴 했지만 최소한 자신이 도달 가능한 범위에서는 글쓰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지식을 전파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글쓰기 기술은 세련되게 될 것이고, 훌륭한 도달력을 가질 수 있다. 만화가가 연재를 하면서 자신만의 완성된 그림체를 갖듯, 작가 역시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지식과 글쓰기를 완성할 수 있다. 자고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반복적인 글쓰기야 말로 가장 훌륭한 자기 학문과 인생, 커리어를 완성해가는 방법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에 가볍게 접근하는 것,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는 무거울 것. 이것만 유념한다면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은 글쓰기를 어떻게든 하겠다는 나의 다짐에 가깝다. (photo by Justin Lueb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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