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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Mar 04. 2024

테트리스

 뭔가 한참 잘못됐다.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소모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잦다. 왜 그런지 구글 캘린더를 열어보니 답이 나왔다. 이토록 산만한 캘린더가 있나. 단순히 바쁘다는 것 이상으로, 일관성이 없어서 괴롭다. 오늘은 이것 관련, 내일은 저것 관련. 일정이 참 알록달록하기도 해서 더 열받는다. 조각이 맞지 않는 테트리스 블록들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쌓이는 기분이다. 저 알록달록한 블록들이 죄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미팅이거나 다수와 함께하는 회의 일정들이다. 누가 내 인생에 이런 테트리스를 쌓게 했는가. 

     

 회의 때 무언가를 쏟아내기 위해 채우고, 또 다른 회의에서 쏟아내기 위해 채우고. 발산하는 생각이 아니라 쥐어짜는 생각을 하고. 차라리 한 프로를 진득이 하면서 촬영장이나 편집실에 처박혀 내내 밤을 새우던 적은 있어도, 이렇게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을 산 적이 있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에게 각기 다른 색깔의 테트리스 블록을 건네준 이들에게 괜스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테트리스의 블록 하나하나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데, 나만 매사 진지하고 피곤하게 구는 것인가? 역시 나에게 멀티는 어렵다.     

 

 나는 on/off 스위치가 고장 난 사람이다. 안 그래도 사람 성향 자체가 그런데, 일의 직종마저 그러하다. 혼자 있는 시간에 평화롭게 라디오를 듣고, 소설책을 읽고, 좋아하는 문장을 옮겨적고, 혹은 맘이 가는 영화를 보고. 무얼 하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에 시나브로 젖어들고 싶다. 하지만 나는 스위치가 고장 난 사람이므로, 바쁜 일정 사이사이에는 그런 시간을 향유하지 못한다. 일정과 일정 사이엔 걱정이 있을 뿐이다.


 나를 위한 시간을 즐기려면, 그 외적인 것에서 신경 쓰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루틴과 일상이 쉽게 무너진다. 테트리스가 시작되고 시간이 목을 죄어오면, 나는 가장 먼저 나를 위한 것들을 팽개친다. 저쪽 블록들을 깨부수느라 일상의 테트리스는 방치다. 제대로 플레이하지 않으니 계속해서 설거지 그릇 쌓이듯 블록이 쌓인다. 가슴이 답답하다.      


 난 왜 이럴까. 짜증 나지만 어쩌겠나. 이런 성향도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건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언젠간 이 테트리스들을 다 깰 수는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게임 오버시켜도 되는데 나만 너무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건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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