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고 있다. 낮도 길어지고 있다. 해가 길어지면 늦잠을 자도 죄책감이 덜 들어서 좋다. 두 시에 깼는데 다섯 시부터 어둑어둑해지면 마음도 금세 우중충해지기 마련이다. 죄책감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는 느낌. 반면, 해가 길어지면 마음에 햇볕을 오래 쬘 수 있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머리가 쨍-해지는 겨울을 더 선호하지만, 덥고 습해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여름은 딱 질색이지만, 마음에 햇볕이 오래 머무는 기분이 들 때 봄과 여름을 사랑하게 된다.
더 게을러질 수 있어서 좋다는 얘기를 빙빙 돌려 마음의 햇볕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다니. 내가 봐도 궤변론자가 따로 없다. 그래도 완연한 거짓말은 아니다. 겨울의 하루가 20시간이라면, 여름의 하루는 28시간 정도로 느껴진다. 여름의 시간은 시냇물 같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물엿 같이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시간 감각이 무뎌지면서 만들어 낸 잠깐의 여유. 말하자면 물엿 같은 여유.. 가 내 마음가짐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겨울의 생체리듬에 적응된 몸을 되돌려 놓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에는 이내 낮-밤이 쉽게 바뀌곤 한다. 일만 하다가 금방 끝나버린 하루가 영 아쉬워서 그렇다. 그래서 낮의 시간들을 밤으로 찔끔찔끔 넘기다 보면 이내 낮과 밤이 뒤집어지곤 한다. 나는 한국에 있지만 미국의 시간을 살게 된다. 돈 안 들이고 떠나는 기적의 여행법이다. 가능하면 오래오래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점점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