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dbHwihUeBys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강자 앞에서 침묵한다. 그들에게 나의 주장을 펼치기 힘들다. 그들의 배려 없고 이기적인 의사결정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언제나 입 안에서 맴돈다. 입 속의 토네이도일 뿐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타협적인 역지사지로 그들의 입장을 헤아려 내고 만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심지어는 깔깔깔 웃으며 그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진한 현타와 동시에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다. 그러면서 또 속으로 생각한다. 강자에게는 약할 수는 있지. 그렇다면 최소한 강약약약으로라도 살자. 약자를 배려하자. 업무적으로 나에게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후배들이나 유관 부서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자. 그런 다짐. 하지만 사람이 코너에 몰리면 그런 마음 역시 쉽게 무너진다. 이쪽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저쪽을 대할 때 뾰족해진다. 강약약강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눈 깜짝하니 강약약강이 되어있었다. 강약약강은 비겁하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최소한 비겁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20대에는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심지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글쎄다;; 내가 가진 의리란 게 얼마나 얄팍한가. 연인에게는 또 얼마나 비겁했었나. 내가 가진 인류애가. 내가 가진 정의감이. 얼마나 보잘것없나. 내가 이렇게 멋없는 아저씨로 자랄 줄 그때는 정말 몰랐지.
가끔 강강약약인 삶에 대해 상상해 본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걸까. 뭔가 신화나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설화의 느낌이랄까. 멋있긴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판타지 같은 삶의 태도라 좀 공감이 어렵다.
그렇다면 강강약강으로 사는 사람도 있을까. 뭐 예를 들면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나, 하얀 거탑의 장준환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니 주로 김명민 아자씨가 이런 배역을 맡는 거 같다. 강강약강의 삶은 그래도 좀 짜릿할 거 같다. 뭐가 됐든 자신의 생각과 신념으로 판단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삶의 태도는 아닐 터다. 그러니까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로 자주 쓰이지.
강약약강은 비겁하고. 강강약약은 공감이 어렵고. 강강약강이든 강약약약이든. 뭐가 됐든 타인을 대할 때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과 엇나가게 살지 말자.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게 진짜 용기가 아닐까. 비겁한 아저씨가 되지 않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는 한 주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