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호랑이 Oct 01. 2016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10.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빽빽한 건물이 들어차 있는 골목에서 벗어나 탁 트인 강을 보자 또 다른 여행지에 온 느낌이었다. 지도를 꺼내보니 블타바 강이란다. 다리를 건너보고 싶어 찾아보니 가장 유명한 다리는 카렐교. 유럽은 보통 6개월 전부터 여행 계획을 세운다던데, 이제 와서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빈틈없는 꼼꼼함 또는 대책 없는 무모함 사이 중간이 없는 내 성격을 잘 알기에,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고 날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가는 곳마다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건가.'

카렐교를 건너자 또다시 예술작품 향연이 이어졌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미술관에 온 듯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아니, 이 경우에는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목적지는 프라하 성이었는데, 트램프를 타지 않고 구시가시에서부터 도보로 걸어갔더니 아침부터 강행군을 했던 탓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프라하 성 앞에 도착했지만, 바닥난 체력 때문에 들어가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지만 혼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때마침 나오는 제복의 군인들. 저보고 웃은 거 맞죠 : )


11.

"다른 건 필요 없고, 마그네틱은 꼭 사와"

아무런 계획 없이 유럽여행 떠날 거라는 동생에게 걱정이나 응원의 말 대신 마그네틱을 주문한 우리 오빠. 출국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유럽에 온 걸 알고 있는데 관심이 없거나 아예 모르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쳇. 미우나 고우나 하나밖에 없는 친오빠가 생각나 언덕길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혼을 담아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후덕한 아저씨가 있는 첫 번째 가게에서 사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 가게에 들렀더니 더 예쁘고 저렴한 물건이 있었다.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결국 가장 꼭대기에 있는 가게까지 빈 손으로 도착했다.


신중에 신중을 더해 디자인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야, 이것 봐라. 진짜 귀엽다 이거."

심장이 쫄깃해지면서 목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한국 사람이었다. 부부 동반여행을 온 듯했다. 낯선 사람에게 절대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내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뜸 물었다.

"한국인이세요?"

"아, 네. 아가씨는 일행 없어요?"

"네, 저 혼자예요. 어제 저녁 늦게 도착했어요. 한국사람 보니까 진짜 반갑네요!"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외국으로 유학 온 지 최소 세 달은 된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아이구, 아가씨 혼자 유럽까지 오고 대단하네. 여행 재미있게 해요~"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짧은 대화가 끝나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여행을 꿈꾸던 나였다. 그런데 막상 먼 유럽까지 오고 나서야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번 여행으로 깨달은 것 중에 하나. 여행은 다시 돌아갈 곳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 어떤 걸로 할래?

오빠에게 톡을 보내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장이 왔다.

- 왼쪽!

확 그냥 오른쪽 걸로 사려다 봐줬다.


12.

구경을 마치고 카렐교를 다시 건너오는데, 젊은 남녀 두 쌍이 너무 행복해서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나도 저들처럼 젊고 자유로움을 깨달았다. 혼자 힘으로 유럽까지 왔고, 지금 이렇게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는데 내가 저들보다 자유롭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건 그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밖에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 짐을 찾아 새로운 숙소로 이동했다. 하루 종일 심하게 한국앓이를 하다가 결국 한인민박을 검색했다. 이름도 정겨운 엄마민박. 프라하 거리는 울퉁불퉁한 돌이 많아, 조금만 캐리어를 끌어도 팔이 얼얼했다. 하루 만에 팔과 다리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었다. 구글 지도를 따라 도착한 건물에 벨을 눌렀다.

"네, 엄마민박입니다."

한국어를 듣자마자 또다시 울컥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묵으려고 하는데 방 있나요?"

민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쾌적하고 아늑했다. 안전하게 잘 곳을 마련해 두고 다시 나와 구경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오늘은 어디서 묵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구경할 때와 느낌이 확연이 달랐다.

여러모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설렘과 외로움의 줄다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