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성 #성 비투스 대성당
13.
"으악!"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을 보고 서 있는데 오른쪽에서 스케이트보드 탄 남자아이가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어 쌍방과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바닥에 고꾸라진 건 나 혼자였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스케이트보드 탄 남자아이와 그의 부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번 쓱 쳐다보더니 그냥 가 버렸다.
'뭐야, 부딪혀서 사람이 넘어진 걸 보고도 그냥 가는 거야? 와 진짜 어이없다.'
그 순간 올라오면서 보았던 빅 엿을 날리고 있는 맥주병이 생각난 건 우연이 아니겠지.
14.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티켓을 사기 위해 상큼한 민트색 가게에 들어갔더니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흡사 <겨울왕국>에 나오는 털북숭이 아저씨를 본 느낌이었달까.
24 코루나만 내면 편하게 정상까지 갈 수 있는 걸 어제는 왜 그렇게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
프라하 성 앞에 도착했다. 민박 주인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으로 따뜻하게 배를 채우고 나왔지만, 어제 먹어보지 못한 길거리 음식을 먹어볼 요량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와, 여기 사람들 진짜 떼돈 벌겠다. 하루에 얼마나 벌려나? 몇 달만 일해도 일 년 생활비는 거뜬할 거 같은데.'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며 음식을 고르다, 고기와 야채가 골고루 꽂혀 있는 꼬치가 제일 만만해 보여 집어 들고 줄을 섰다. 앞에 있는 중국인은 아예 포장용기를 들고 두세 개 종류를 손으로 가리켰다. 직원이 종류별로 한가득 용기에 담아주는 것을 보고 굉장히 인심 좋다고 생각하던 순간, 저울에 올려 무게로 가격을 책정했다. 음식이 듬뿍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던 중국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심지어 피클 몇 개도 따로 돈을 내야 된다는 설명 없이 무조건 음식에 끼워 팔고 있었다.
"난 딴 거 필요 없어. 이것만 주면 돼."
I don't need anything else. Just this one.
직원이 무언가를 얹어 팔려고 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선수 쳤다. 있는 사람이 더 한다더니, 돈 몇 푼 (몇 푼이 아니려나) 더 벌려고 여행객을 대상으로 야박하게 구는 모습이 미웠다. 흥.
15.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감으로 목 안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종교가 없는 나지만, 성 비투스 대성당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하늘을 향해 뾰족이 솟아있는 지붕과 수백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흑갈색의 모습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드러눕지 않는 이상 어떤 자세로도 그 웅장한 자태를 카메라 프레임에 담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입 벌리고 목이 빠져라 위를 쳐다보고 있는데 꽈당하고 남자아이와 부딪혀 바닥에 고꾸라져버린 거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제주도에 갔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바닷가에 가니, 해녀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때마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이, 젊은 양반. 뭐하는 사람이길래 양복을 그리 빼 입었수?"
"바이올린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바이올린? 그게 뭐꼬? 뭔진 모르겠지만 연주하는 거 함 들려주소."
남자는 연주를 시작했다. 수 백명의 관중을 바라보고 있는 무대가 아니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다. 난생처음 바이올린 연주를 듣던 할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이기 뭐꼬.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린데 주책 맞게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예술은 나이, 문화, 종교를 초월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제주도 해녀 할머니가 느낀 감정을 나도 느꼈다. 대성당을 들어서자마자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면서 몸이 공중으로 살짝 떠오르는 것처럼 흥분되었다. 아이폰 카메라 하나 달랑 챙겨 온 과거의 나를 콕 쥐어박고 싶어졌다. 인간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함 속에 구석구석 어디 하나 정교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수십 개의 스테인드글라스, 화려한 금빛 장식 등 하나도 빠짐없이 내 눈과 마음에 옮겨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