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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호랑이 Oct 02. 2016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걸

#황금소로 #스타벅스 #엄마민박


16.

프라하성 뒤편에 있는 황금소로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영화 세트장 같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자그마한 가게들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들의 집을 방문하는 기분이 들었다. 언뜻 들은 이야기로는 연금술사들이 살았다, 황금을 다루는 엄청난 부자들이 살던 곳이다 라는 이야기는 있는 곳이라 아기자기한 물건 외에 무시무시한 고문도구와 갑옷도 있었다.


빼꼼, 들어가봐도 되나요?


황금소로 가게는 천장이 낮아서, 키가 큰 사람들은 고개를 한껏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서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면 방 안에 모든 것을 스캔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그 좁은 공간 속에 무표정으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매일 같이 이곳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수백 명씩 오가는 곳에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가게를 지켜야 하는 그들. 누군가에게는 가슴 벅찬 여행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간과 돈을 맞바꾸어야 하는 직장이었다. 하긴, 내가 아침마다 퉁퉁 부은 얼굴로 힘겹게 출근하는 광화문도 여행자들에게는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 곳일까. 신들의 나라에 있다가 다시 인간 세계로 내려온 것처럼 공중에 떠올랐던 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좀 더 무거워진 듯했다.



17.

기왕 인간 세계에 다시 온 거, 프라하성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이런 곳에 매장을 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바닐라 마카롱을 주문했다. 창가 자리는 이미 꽉 차 있어서 구석자리에 앉아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때,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어제처럼 울컥하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에 돌아보니 한 두 명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한국사람이 여기는 어쩜 이렇게 많은지. 그것도 나처럼 혼자 온 여자가 언뜻 봐도 세 명은 되었다. 테라스에 나가니 더 많은 한국인들이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다들 어디 숨어 있다가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거야.'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여기가 한국인지 프라하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물고 다시 나왔다.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웠지만, 아직까지는 프라하에 있다는 달콤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18.

다섯 시간 동안 돌아다녔더니 몸이 녹초가 되었다.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다행히 같은 방을 쓰는 여학생도 밖에 나가 조용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주인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학생, 새벽에 일찍 나가더니 벌써 들어왔네? 구경은 잘 했어?"

"네. 프라하성 보고 왔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그렇지? 여기는 오페라 공연도 많이 해. 오늘 저녁에도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누워서 대답하기 뭐해 몸을 일으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한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다른 아주머니께서 놀러와 합세했다. 덕분에 대화에서는 빠질 수 있었지만, 수다 떠는 두 아주머니 때문에 잠자기는 글렀다 싶었다.

'거실이랑 위층도 있는데 왜 굳이 여기서 이야기 하시는거야.'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런데 계속 들으니 나름 재미있었다. 식당에 설치한 와이파이가 고장 나서 고생했던 일, 한 번 나갔다 하면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 속 썩이는 아들, 먼 타지에 와서 숙박업을 시작하기까지의 고난 등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괜스레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해졌다.  


나는 프라하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옷 속에 돈과 여권이 들어있는 복대를 차고 있었다. 핸드폰과 충전기가 들어있는 보조가방은 앞으로 당겨 메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방 입구는 항상 손으로 꼭 붙잡고 있었다. 매 순간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사람을 만날 때는 특히 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아침마다 회사로 출근하고,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게 가게를 열고, 아이는 엄마 손 잡고 학교에 가는 그런 곳이었다. 처음으로 어떤 걱정도 없이 편안해졌다. 두 아주머니의 웃음소리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자장가처럼 들리더니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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