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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호랑이 Jul 24. 2017

도피


신입은 부쩍 자기계발 강연 들으러 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업무 중에 핸드폰으로 오프라인 강연을 검색하기도 했다. 힘든 시절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을 들으면 그들의 삶에 감정이입 되면서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원래 다양한 분야의 강연을 끌리는대로 신청했는데, 지난 몇 주간은 '1인 창업'으로 주제가 집중되었다. 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에도 회사를 뛰쳐나와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유독 귀에 쏙쏙 들어왔다.


신입의 관심이 온통 창업에 쏠리면서 창업만이 하루빨리 회사를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기 때문인지,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루빨리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H팀에서 추진하는 업무 때문에 다른 부서 담당자들과 회의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신입은 회의 2주 전부터 회의 가능한 날짜를 취합하고, 어렵게 결정된 회의 날짜와 시간을 1주 전에 공지했다. 회의 3일 전과 하루 전, 당일 아침에도 회의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정시에 참석을 당부하는 메일을 보냈다. 회의 때마다 10분씩 늦는 사람들 때문에 회의가 지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메일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J팀 2명이 1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미리 도착한 6명은 기다리다가 지쳐 각자 업무 노트북으로 개인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회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고, 화가 난 신입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최 대리님이시죠? 오늘 오후 2시부터 회의 있는데 지금 어디 계세요? 다들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가고 있는데요?"


회의에 늦게 오면서 어이 없이 당당한 최 대리의 무례한 태도에 신입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걸 겨우 참았다. 곧 최 대리와 장 대리가 문을 벌컥 열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회의 일정은 새카맣게 잊고 자리에서 개인 업무 보다가 전화 받고 그제서야 출발한 것이 틀림 없었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은 각자 노트북으로 업무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늦게 도착한 2명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으며 얼른 회의 시작하라는듯이 신입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날 아침만 해도 그랬다. 매주 금요일 아침엔 팀별로 다과를 준비해서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있다. 작년 7월부터 다과 사오는 일은 김 주임과 신입의 몫이었다. 팀원 모두 번갈아 가면서 사오면 좋으련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듯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서 다과를 준비하러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면 업무 시작하기도 전에 피로가 쌓이는 기분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 팀원들은 30분 일찍 도착해서 다과를 사와 테이블에 셋팅하는 두 사람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컴퓨터만 응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다과를 먹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소시지 빵을 사오지 않았다고 핀잔을 주거나, 양을 너무 많다 또는 너무 적다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부각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 시간에 늦에 나타나서 뻔뻔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에게 문제가 있는 것임에도 신입은 자신을 무시해서 한 행동일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매주 다과를 준비해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팀원들에게도 서운한 감정이 커져갔다. 자리에 앉아 하루종일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무조건 그만둘거야. 팀장님께 다음주에는 말씀드려야겠다. 월요일은 대표님 보고니까 타이밍이 별로 안 좋고, 수요일쯤 말씀드리면 되겠다. 하, 시간아 빨리가라."








1장. 적응기

자기소개

첫 출근

센스가 필요해

달콤한 행복

월요일

언니의 조언

닮고 싶은 그녀

정리의 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


2장. 권태기

심상치 않은 기류

낙동강 오리알

일 안한다고 소문 났어?

대표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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