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내적, 외적인 변화를 겪고 지금의 자신이 되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변화의 원인은 수도 없이 많다. 내가 원했던 환경적인 변화, 원치 않았던 환경적인 변화, 주변 사람들의 생과 사, 소셜 네트워크 속 넘쳐나는 정보, 우연히 마주친 여러 자극들. 수도 없이 많은 자극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무엇이 변했는지, 왜 변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었다면, 이제부터는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글들에 사랑, 우정, 연애, 역사, 철학, 인간관계, 직장, 예술, 물건, 장소 등등 많은 주제가 난무할 테지만 하나의 큰 틀은 동일하게 작성하고자 해서 칼럼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쏟아지는 정보와 사실, 생각들로 복잡해질 때면 변하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곤 했기에 진정한 본질에 대해 나의 의견을 풀어보려 한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첫 번째 주제는 '사람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이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처럼 하루아침에 바뀌기도 하고 어떤 사건으로 인해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기도 한다. 마음을 다 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던 사람도 마음이 식어서 떠나는 경우는 허다하다. 또 이득에 따라 자세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어디까지 이 사람을 믿을 수 있으며 마음을 내어주는 게 맞는지 고민스러워서 방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충격이 컸던 일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친구가 장애인 학우를 내가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반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말했던 사건이었다.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건넸던 나의 말을 아예 왜곡해서 억울하게 몰고 갔던 친구가 왜 나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 이후 갈등이 깊어지자 우리 집에 대한 이상한 말을 하고 다녀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집까지 왕래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쌓아왔던 친구가 악하게 변한 모습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사람에 대해 온전히 믿으면 안 되겠다는 날카로운 유리조각만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고 상처를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 각자 피를 흘리고 나서는 다시 베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상처를 틀어막고 밴드를 붙여놓곤 한다. 모두 상처가 있지만 상처의 크기나 깊이, 부위, 통증의 정도가 다 다르다. 상처에 약도 잘 바르고 밴드도 잘 갈아준 사람들은 희미해진 흉터가 되거나 아예 남지 않게 되겠지만 눈을 감아버리고 밴드만 대충 붙인 사람은 계속 상처가 덧이 난다. '왜 여기가 아프지?'라는 생각만 한다. 눈에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변하고 아파하곤 한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제외하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사람은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다시는 사람에 의지하지 않을 거고 상처도 받지 않을 거라고 다짐해 본들 또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우리는 꼭 사람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상처의 크기와 수가 달라도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며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또 사람과 사람은 각자 필요한 마음의 거리는 다르겠지만 일정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나만 외로운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거리를 10cm라도 유지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크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살아있는 동안의 정신건강과 자기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거리를 더 두고 덜 두고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최소한의 거리 두기를 실천한다. 촉을 세워서 내가 너무 밀착되어 있지는 않은지 혹은 필요보다 더 거리를 벌려주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자동으로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 사람도 분명히 있다. 변하지 않는 사람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한 사람들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유전적 특성 혹은 어릴 때의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아오면서 겪는 사건과 트라우마로 인해 성격이 변한다고 해도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꼼꼼함, 인내심, 털털함 등의 기본적인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섬세하고 매사에 평화로운 기질이 어느 정도 타고났다. 작은 부분을 확대해서 보고 나서는 다시 따라 그리거나 필사를 해놓곤 했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에 안도하는 편이다. 희로애락에 관해서도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는 점도 어쩌면 유전적인 기질에서 왔을 거라고 추측한다.
인간의 위대함에 하루에 몇 번씩이고 놀라곤 한다. 높고 높은 건물을 세운 사람들, 수려한 문장으로 놀라게 하는 소설가들, 인공지능으로 많은 일을 처리하는 과학자들, 국가라는 큰 공동체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정치인들을 마주할 때면 나라는 존재의 크기를 확인하고 더 작아지곤 하는데, 그 와중에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전에 나를 지지하는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대신, 어디서든 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 단단한 무언가를 찾는 여정에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 변함없을 것들을 기록하고 떠올리며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