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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집 Oct 28. 2019

손톱보다 작은 수박씨

수박이 먹고 싶으면(김장성 글, 유리 그림, 이야기꽃)


7월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수박이 먹고 싶으면(김장성 글, 유리 그림, 이야기꽃)>이란 그림책을 발견했습니다. 도서관에 있는 건 오래전에 알았지만 표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미루고 있던 책입니다. 그런데 무심코 펼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수박을 먹고 싶으면 수박을 키우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는 건데, 과정과 탐스럽게 익은 수박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이야기에서 농부의 마음, 부모의 마음, 교사의 마음, 그리고 평화까지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습니다. 그림에도 오랫동안 시선이 머뭅니다. 이런 색깔과 구도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중 가장 마음 깊숙이 내려앉은 것은 '기다림'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여름 내내 "짠 땀"을 흘린 할아버지는 미숫가루 한 그릇 들이켜고 원두막에 누워 낮잠을 청합니다. 수박이 열릴 것을 믿으며, 기다리며 자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얼마나 평화로운지요.


8살부터 19살까지 있는 학교에 있다 보니 운이 좋게도 아이들이 어떻게 커나가는지 볼 수 있습니다. 9살 때 말도 안 되는 논리도 대들던 친구가 19살이 된 후 얼마나 의젓해지는지, 11살 때 많은 교사들과 어른들이 걱정하던 친구가 중학생이 된 후 얼마나 차분해지는지.


아이가 어릴 적에 많은 부모들이 한 번쯤 당신의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의심한다고 하죠. 그런데 반대로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가 잘 크고 있는 게 맞는지, 이것도 모르는 게 괜찮은지, 천재라고 기대했던(?) 횟수와 시간보다 수천 배는 더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보직을 바꾼 후 2년 차인 저는 여전히 실수를 하고 외부에서 서류 작업을 요청받으면 큰 돌을 껴안고 앉은 듯 사색이 된 채 며칠 끙끙 작업을 합니다. 1년 전까지 옷을 구분하지 않고 세탁기에 넣었고 백종원 아저씨가 방송에 나오면서 레시피라는 걸 찾아 요리 아닌 조리라는 걸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렇게 서투른 것도, 배울 것도, 익혀야 할 것도 많습니다. 어른이라는 우리도 이런데 아이들은 하물며. 손톱보다 작은 수박씨를 심으며 수박 크기만 한 구덩이를 파는 것처럼 아이들을 단단히 믿으며 기다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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