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중 Nov 04. 2023

선선선, 선의 하루

 지선은 평소처럼 단지 내 GX센터에서 싱잉볼 테라피를 받고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차에 붙어있는 노란색 스티커를 발견한 순간, 방금 전 싱잉볼의 여운이 뚝 끊기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주차위반 경고장 - 래미자이 관리사무소'. 길거리에서도 주차 딱지 한 장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로써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벌어진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바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도대체 단속사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담당 직원은 주차구획선 위반이라고 했다. 돌아보니 그의 차 오른쪽 뒷바퀴가 주차구획선을 살짝 넘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선을 조금 넘은 것까지 단속 대상이 된다는 것은 지선에겐 금시초문이었다. "주차관리규약 3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아파트 입대위에서 일절 예외 없이 적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요" 직원은 자기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켜서 한 것 치고는 얼마나 야무지게 꾹꾹 눌렀는지 부착된 스티커는 좀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벗겨낼수록 찢긴 부위는 더 지저분한 얼룩이 되어버렸다. 그는 결국 제거를 포기하고 마치 이마에 껌을 붙인 채 출근하는 심정으로 운전석에 앉았다.  하지만 운전석 창에 눌어붙은 껌딱지 같은 주차딱지는 그의 시야를 방해했을 뿐 아니라 마음의 창에도 균열을 내고 말았다. 마포대교 근처에서 1차선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하얀색 아우디와 그만 추돌할 뻔한 것이다. 경적소리와 함께 아우디 차주는 "운전 똑바로 못해, 깜빡이도 안 넣고 차선을 넘으면 어쩌자는 거야"라며 욕설을 뱉고는 붕~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에도 노란 스티커의 저주는 계속되었다. 그가 강의하는 현대철학사상 1교시 후 한 학생이 지난주 수업에 5분 늦어 지각처리된 것을 출석으로 인정해 줄 수 없겠냐고 물어왔다.  말이 안 되는 요구였다. 그는 “5분 지각도 지각입니다. 예외는 없어요” 잘라 말하고는 되돌려 보냈다. 


 그의 거절에 대해 학생은 2교시 수업 도중에 자신의 방식으로 화답을 해왔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공정성 이론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교수님도 오늘 5분 늦게 수업 시작하신 걸로 아는데요.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진정한 공정 아닐까요?.... 참, 그리고 세차하셔야겠던데요. 정지선 교수님” 학생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도발에는 교양과목 시간강사쯤은 에타 게시판에서 올리면 그만이라는 자신감도 계산되어 있는 듯했다. 욱하는 기분과는 달리 그는 이 상황을 가급적 원만하게 넘겨야만 했다.  "이쯤 되면 선 넘는 것 같은데..."  그는 농담 삼아 말했지만 아무도 웃지 많았다. 


 너덜 해진 차에 너덜 해진 몸을 태우고 퇴근 한 지선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입주민 사우나에 들어가 너덜 해진 영혼을 리셋하는 것이었다. 에어팟으로 명상음악을 들으며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를 돌아보며 마음 챙김에  빠져있는 그에게 한 스포츠머리의 남자가 “여기 전자 기기 금지인 거 모르쇼? 라며 ‘휴대폰 반입 금지’라고 적힌 안내문을 가리켰다. 


  자신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주억거리며 자리를 뜨는 지선의 뒤로 ”쯧, 공중 교양이 없어"라며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지선은 사우나 수증기가 자신의 머리에서도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오늘따라 모든 것이 태클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태클은 이 작은 커뮤니티 안에도 덫처럼 도사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우나 벽면을 둘러싼  염색금지, 탕내 대화금지, 드라이어 모발 외 사용금지.. 이 모든 것들이 여차하면 태클을 걸며 언제 시비를 걸어올지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지선은 몇 분 지나 스포츠머리 사내가 파우더 룸에서 드라이를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침 잘됐다. 너도 한번 걸리기만 해 봐라’라는 마음으로 사내를 계속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선의 바람과는 달리 그 바른생활의 스포츠머리 사내는 드라이어를 다른 신체 부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덫에 걸리지 않는 그에게 약이 바짝 오른 지선은  사내를 좇아 사우나 화장실 소변기까지 나란히 섰다. 결국 힐끔힐끔 처다 보다 마침내 건수를 잡고 말았다. 


 “이봐요 왜 선을 안 지키는 겁니까, 교양 없이” 

 “선이라니? 무슨 선 말이요? 

 “앞에 쓰여 있잖아요. ‘한 발자국 앞으로’ 그거 소변선인 거 몰라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듯 볼일을 마치고 나가는 사내의 뒤통수에 대고 정지선은 절규하듯 외쳤다. 



“우리 제발 선 좀 지키며 삽시다. 네?"


작가의 이전글 나비의 효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