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가로운 오후, 와이키키 해변에 누워있는데 뒤쪽에서 갑자기 싸우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경찰들이 여럿 보였다. 그들은 한 남자를 반원으로 둘러싸고 뭐라 뭐라 말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해변에서 노숙자를 쫓아내려는 듯했다.
지상 낙원, 와이키키 해변
한참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영어 대화를 한글로 표기했다.)
“저기 무슨 일 있어?”
한 남자가 지나가던 길에 큰 소리를 듣고 멈춰 선 듯했다.
“가운데 있는 남자가 노숙자인데, 경찰이 해변에서 나가라고 경고하는 것 같아.”
“아, 그래? 근데 옆에 앉아도 돼?”
답변할 새도 없이 그는 내 옆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 사람이야.”
“승무원?”
“아니.”
“그럼 무슨 일 하는데?”
“회사원이야.”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개인적 질문을 받는 것이 불편했다. 상당히 차갑게 대답했는데도, 남자는 굴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계속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결국 그는 질문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생은 이탈리아지만 아시아 문화를 좋아해서 한국과 일본에 살았다고 했다. 일본에 살다 보니 하와이에 여행 가거나 이민 가는 지인이 많았단다. 자신도 호기심에 몇 번 방문했다가, 지금은 아예 하와이로 이주해 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일본인들의 하와이 사랑이 외국인에게까지 옮아갔구나, 싶었다.
2.
하와이 현대사는 이민의 역사다. 그중에서도 유독 일본인들의 지분이 높다. 거리 곳곳에서 일본인을 볼 수 있고, 일본인이 하는 일본 음식점도 많다. 심지어 교통 표지판에 일본어가 병기된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하와이에 많이 살고, 하와이를 많이 찾는 이유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일본과 하와이의 첫 조우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들의 하와이 이민은 1867년 메이지유신 무렵부터 시작되었다는데, 일본 정부가 공인한 최초의 하와이 이민은 1885년이 시발점이다. 하와이에는 19세기부터 플랜테이션 농업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유입이 많았다. 1900년 기준, 전체 인구 중 일본인이 약 40%, 중국인이 약 16%로, 과반 이상이 아시아인이었다.
경제적 풍요를 찾아 떠난 이들 외에도, 정치적 이유로 하와이를 찾은 오키나와 출신 류큐인들도 많았다. 이들은 일본 본토에서 차별과 홀대를 받다가 새로운 삶을 찾아 이주를 선택했다. 지금도 와이키키에서는 매년 오키나와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그 역사가 40년이 넘는다.
와이키키 해변 가는 길
이처럼 하와이에 일본인과 일본 문화가 유입되는 한편, 일본에도 하와이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는 점령국인 미국 문화가 흘러들어왔다. 그중 하와이 음악을 비롯한 하와이 문화도 포함되었다. 일례로 1948년에는 <동경하던 하와이 가는 길>이라는 노래와 동명의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에는 해외여행 자유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 무렵, 고토부키야(지금의 산토리)라는 주류 회사에서 낸 광고가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 도리스 위스키 구매자 중 100 명을 추첨해 하와이 여행자금 적립예금증서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는 “도리스를 마시고 하와이에 가자!”는 문구로 지금도 회자된다.
1964년 봄, 드디어 해외여행 제한이 풀렸지만, 서민들에게 하와이 여행은 여전히 너무 비쌌다. 하와이 분위기라도 느껴보려는 이들을 위해 일본 내에 하와이 풍 관광지가 생겨났다. 특히 1966년 문을 연 조반 하와이안 센터(지금의 스파리조트 하와이안즈)는 연간 15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70년대에는 일본 경제가 호황기를 맞은 데다 여행 경비가 저렴해지면서 하와이 관광객이 급증했다. 이와 함께 서핑, 서퍼 커트 등 하와이 관련 문화가 젊은 층에 퍼져 나갔다. 이제는 하와이가 잘 팔리는 마케팅 수단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일본인들의 하와이 사랑은 200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2000년 출간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에서 하와이는 화자의 아버지가 동경하는 지상낙원으로 묘사된다. 2006년에는 조반 하와이안 센터 건립 당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훌라 걸스>가 개봉해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3.
그러고 보니 하와이에 머무는 일주일간 일본 음식을 참 많이도 먹었다. 원래 일본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호놀룰루에 일본 음식점이 많았다. 볼케이노 라멘이며 카이센동, 우동 등을 식사로 먹었고, 무스비는 거의 매일 간식처럼 먹었다.
특히 담백하면서도 든든한 무스비는 익숙한 맛임에도 도무지 질리지 않았다. 뭉친 밥에 계란, 스팸 조각을 얹고 김으로 싸서 만드는 무스비(musubi)는 주먹밥을 뜻하는 일본어 오무스비(お結び)에서 유래했다. 하와이에 온 일본인들은 고향에서처럼 밥을 뭉쳐 스시나 무스비를 만들어먹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생선을 구하기 어려워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스팸을 대체재로 쓴 것이 무스비가 되었다.
참고로 주먹밥을 일본 간토 지방에서는 오무스비, 간사이 지방에서는 오니기리(お握り)로 불렀다고 한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오니기리를 좀 더 보편적으로 쓰는데, 오히려 하와이에는 무스비가 일반 명사로 자리 잡은 것도 재미있다.
그렇게 탄생한 하와이안 무스비는 어느덧 하와이의 대표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고향인 하와이에서 스팸 무스비를 먹자, 미국 본토 언론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인 적도 있다. 당시 기사를 보면, ‘하와이에서 자랐다면 누구나 스팸 무스비를 먹는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흥미롭게도 주먹밥 무스비는 일본어에서 매듭, 인연을 뜻하는 단어 무스비(結び)와 발음이 같다. 이 단어는 2016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 주제 의식을 함축한 단어로 쓰이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에서 무스비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사람과 장소가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모든 이어짐은 우연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필연적인 인연이다. 그 신비함과 아련함 때문에 인연의 엇갈림에 아파하다가도 결국엔 다시 희망을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하와이에서 무스비를 먹을 때마다 <너의 이름은>을 떠올리며, 인연의 의미를 한 번씩 다시 생각하곤 했다. 우연 같은 어떤 것이 사실은 필연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인연을 강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정말로 인연이 맞다면 언젠가는 다시 연결될 테니까.
4.
다시 와이키키 해변의 이탈리아 남자에게 돌아가 보자.
잠깐 한국에 살 때는 사진작가로 일했는데, 유명한 케이팝 아이돌의 화보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가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 중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케이팝에 관심 있는 전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아이돌도 몇 명 있었다.
내 눈에서 순간 반짝이는 빛을 읽었는지, 그는 신이 나서 자신이 작업했다는 아이돌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엄청난 아이돌 덕후다.) 아예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며 구글에서 검색해 보라고 재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손에 폰을 쥐고 있었다.
“근데 한국인이면 카카오톡 쓰겠네.”
“응.”
“나 친구 추가해 줘.”
“아, 근데 외국 번호로는 친구 추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
사실 이건 거짓말이었다.
“다른 방법으로 하면 돼.”
“그래? 난 모르는데.”
이것도 당연히 거짓말. 그러나 그는 상당히 끈질겼다.
“방법이 있어. 내가 할게.”
그러더니 아예 내 폰을 가져가 QR 코드로 친구 추가를 해버렸다. 결국 불편함이 한계치를 넘었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짐을 챙겨 일어나며 바래다준다고 했다. 한사코 거절하자 다행히 순순히 보내줬다.
귀국 후, 두어 번 카톡이 왔다. 곧 한국에 갈 테니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그냥 차단할까 하다가 예의 바르게 거절 문자를 보냈다. 회사 일과 데이트 때문에 너무 바빠 만날 수 없다고 말이다. 거절의 표현이 너무 완곡했는지, 연락은 계속 됐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건 2월 초였다. 그달 말 서울에 갈 테니 시간을 비워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 기간에 바르셀로나 출장이 잡혀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스페인에 있을 예정이라 못 보지만 한국에서 좋은 시간 보내길 바란다고 짤막하게 답장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온 카톡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You’re a freak.”
당황한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 최선을 다해 예의 바르게 대했는데 왜 그런 답장을 받아야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이후로 집에서 하와이안 무스비를 만들 때면 그때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 아니다. 스쳐 지나간 모든 인연이 무스비(musubi)처럼 담백하고, 무스비(結び)처럼 자연스럽게 남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