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미디어에서 어리고 예쁜 신입 여사원을 질투하는 늙고 안 예쁜 여자
미디어 속 직장생활은 너무 극단적이다.
많은 미디어에서 어리고 예쁜 신입 여사원을 질투하는 늙고 안 예쁜 여자 상사 구도가 참 만연해 있다.
젊고 잘생긴 신입 남사원을 질투하는 늙고 못생긴 남자 상사 구도는 아주 드물다.
이것 때문에 으레 사람들은
"직장이란 본래 일이랑 관계 없이 후궁암투 여적여 구도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라는 편협한 사례를 일반화시킨다.
솔직히 그렇게 할짓 없는 여자들이 있는 직장도 물론 있겠지만, 저게 디폴트모드는 아니다.
할 짓 없이 직장에서 후궁견환전 찍는 사례는 매우 특수하다.
내 사례로 말할 것 같으면,
경영지도사 합격 이후 7년간 내 커리어 중 직장 내 여적여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오히려 난 지독한 남적남 구도가 지배하던 직장을 한 번 겪어봤고 남적남 피해자의 분노는 내게로 불똥이 튀었다.
그 직장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성녀화되서 상대적으로 편한 입지에 처한 것처럼 보였던 나에게.
(하지만 성녀화 또한 남적남 못지 않게 지독한 학대와 차별이고, 나는 나대로 그걸로 인해 극도의 상처를 받았다)
물론 내가 직장 버전 여적여를 안 당했다고 해서,
"세상에 여적여 따위는 없다, 오직 여돕여만 있다."는 어떤 유파 페미니스트같은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자는 당연히 여적여한다"는 주장만큼 "세상에 여적여는 절대 없다"는 편협한 주장을 극도로 혐오한다.
저 말 하는 사람 명치를 한 대 치고 싶을 만큼.
내 여적여 역사는 학창시절에 온통 집중되었다.
솔직히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난 예쁘고 공부 잘하고 기 약하고 소심한 애였다.
이유 없이 여자애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쉬운 캐릭터이다.
그러므로 여적여 논리 자체를 반박하기 위해, '세상에 여적여 사례는 없고 여돕여 사례만 있다,
예쁜 여자가 왕따 당하는 사례,
그건 걔가 여우짓을 했거나 성격이 이상해서 그래' 라는 주장을 정말 싫어한다.
왜 나라는 피해자를 지우려고 하지?
2016년 경까지만 해도 한국 인터넷의 페미니즘 흐름은
여적여라는 그 유규하고 지긋지긋한 주장을 타파하기 위해 반대 급부 주장인 '여돕여'를 밀려는 경향이 만연했다고 느낀다.
그런 과정에서 내 피해 사례는 지워지고 부정당했으며,
나는 페미니즘 자체에 큰 상처를 받아서 페미니즘에 싫증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절친과도 사이가 멀어졌고.
2022년 현재 내가 보기에 한국 페미니즘의 흐름은
여적여를 타파하기 위해 반대 급부 여돕여를 밀지 않는다.
여돕여도 여적여 못지 않게 여성을 차별하는 여혐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인지하셨다.
이제 이 분들은 개별적인 사례를 일반화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어리석다고 한다.
어떤 나쁜 여자가 여자를 이유 없이 미워할 뿐, 그 사례가 여자를 대표할 수 없다고.
세상은 느리지만 꾸준히 좋은 쪽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