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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Oct 26. 2018

다수가 아닌 삶이라고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오주환 - 잘 살고 싶은 마음

누구나 그렇듯,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의 정도가 점점 게을러지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악을 여전히 열렬히 좋아하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삶의 각 시절마다 떠오르는 음악들이 있기 마련인데, 단순히 연대적으로 떠올려보면 10대의 그때는 너바나, 서태지, 시이나 링고가, 20대에는 라디오 헤드, 스몰오, 에이미 와인하우스, 30대가 되고 나선 베토벤, 쇼팽, 루시드폴 정도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같다.


이 책은 내 20대를 떠올리게 하는 밴드 스몰오와 이스턴 사이드킥의 보컬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세상 핫한 밴드 아도이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오주환 선생님의 책이다. 5살 정도 차이 주제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건 내가 선생님에게 기타를 배웠었기 때문인데, 클럽 빵에서 스몰오에 첫 눈에 반했던 나는 선생님의 트위터에서 기타 레슨을 한다는 글을 보자마자 선생님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기타를 잘 치고 싶은 마음 보단 선생님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더 모티베이션이 있었는데, 그때 나에게 선생님은 초딩 시절 내가 광팬이었던 신화의 에릭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책은 한 음악가의 여행, 삶, 음악, 가족, 친구, 연애, 지나간 시절, 앞으로에 대한 고민들이 단편적으로 엮여있다. 전혀 멋 부리지 않은 글로 음악가가 얼마나 멋지지 않은 일들을 많이 해야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만큼은 얼마나 멋지게 해내고 싶은지 고백하는데 그게 참 멋있다. 사실 조금은 징징거려도 될 텐데, 사심없는 의연함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이 마음에 더 짠-하고 스며드는 게 꼭 고레에다 히로카즈 초창기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레슨 때 봤던 선생님의 말투, 제스쳐, 목소리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 아는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건 이런걸까 라며 웃음이 나기도 했는데, 뭐랄까, 이따금씩 언급했던 스스로의 나이에 대한 책임감이라든가, 겸손이라기 보다는 겸허에 가까웠던 그 뉘앙스들, 스스로에 대한 얘기를 꺼낼때는 늘 완연했던 부끄러움, 약간은 어눌한 말씨 중간중간 느껴졌던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긍지보다는 투지에 가까운 어떤 단호함. 이런 것들이 책의 문장에, 행간에, 삶 속의 에피소드에 아주 자연스럽게 배어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음악을 할 수 있다. 내 주위에도 음악가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참 많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호기롭게 음악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홍대를 떠났고, 다른 직업을 찾았고, 스스로가 한 때는 음악가였다는 사실에 어떠한 열등감과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더라. 그런 걸 보면 결국 끝까지 그만두지 않은 사람들만이 어떠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건데,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겠는 채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정제해 나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로 캄캄한 것일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스스로와의 끊임없는 싸움, 위험천만한 세상과의 쉼없는 실랑이. 음악에 모든 걸 다 걸어버린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 우리가 몰랐던, 혹은 알면서 모른 척 했던 다른 종류의, 아마도 다수가 아닌 자들의 삶과 그 삶의 쓸쓸함에 대한 깨달음, 그것이 주는 마음의 헛헛함.


요즘은 내가 돈이 많다라든가, 내 차가 이거라든가, 내가 이렇게 잘났다든가 라는 식의 노래들이 인기가 많더라. 모두가 스스로를 뽐내느라 소리를 질러대는 시끄러운 시절, 홍대에 살고있는 삼십대 중반의 한 음악가가 이래도 될는지 모르겠다며 부끄러움 한가득 내놓은 책이 반가운 건, 내가 아직도 기타를 잘 못치기 때문일수도, 고독이 너무 싫지만은 않은 가을이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그냥 내게 기타를 가르쳐준 선생님의 책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는 이런 부끄러움이, 그리고 이토록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만큼은 선생님의 잘 살고 싶은 마음 만큼이나 간절하다. 부끄러움이 아니라면 무엇이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지를 나는 도통 모르겠어서. 그러니까 이 괜찮은 음악가의 삶이 마냥 잘못된 것 만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그와 같은 모든 다른 종류의 삶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서. 그런 진심 가득한 응원이 내 삶을 더 잘 살고 있는 것 처럼 느끼게 해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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