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국엔, 또다시, 불행하게 오래오래 일까요?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그을린 피부, 밝아진 머리카락, 빨간색 원피스, 하얀색 티셔츠, 파란색 바다, 초록색 숲. 그 다채로운 색깔을 좋아한다. 더위가 시원함으로 바뀌는 그 찰나의 순간을 좋아한다. 실바람, 나무 그늘, 시원한 얼음물. 여름에 가장 사랑스러운 사소한 것들이 있지 않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출근길에 책을 처음 읽었다. <입동>을 읽고 책을 덮었다. 비가 오는 날 다시 책을 폈다.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다시 책을 덮었다. 그렇게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씩 천천히 읽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다 읽고 난 후의 기분은 아주 또렷하게 남아있지만.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하지만 습도도 높고 기온도 높은 날 만큼은 견딜 수가 없다. <바깥은 여름>은 내 발걸음 마저 끈적거리는 그런 끕끕한 날 같았다. 무엇을 해도 무의미하고, 그 어떤 삶에도 불행만이 찾아올 것 같은, 우리 모두가 나쁜 사람일 수 밖에 없는 삶의 순간들. 계절처럼 지나가는 게 아니라, 끈적끈적하게 붙어있을 삶의 결론이 불행인 것 처럼 보여 난 책이 참 싫었다. 힘 없는 주먹으로 두드려 맞은 느낌이랄까.
꼼짝도 할 수 없는 의자에 앉아 누군가의 맥아리 없는 목소리로 삶은 이렇게 고통스럽지만,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거라고. 이미 다 아는 이야기에 대한 한바탕 설교를 들은 것 같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거야' 하고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게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결론과 희망이 있어야만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행과 비극이 좋은 소설의 전부 또한 아닐 것이다. 한 켠의 그늘이라도 있었다면, 잠깐의 실바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 숨을 쉴 만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삶인데, 조금은 더 살만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좋은 소설이란 게 뭔지, 살만한 삶이 있기는 한 건지, 내가 그 답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