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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Jun 27. 2017

[트레바리 문블루] 이방인 by 알베르 카뮈

6月, 東京의 밤 


시부야 뒷골목의 홍등가를 지나 도착한 그 곳엔 백인 남자가 앉아있었다. 담배냄새가 났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모차르트일 것 같은 피아노 협주곡이 흐르고 있었다.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 스피커, 그 앞에 놓여진 베토벤의 두상, 낡고 조그마해서 도저히 편하게 앉아있을 수 없는 의자, 그 옆 룸살롱에서 가져왔을 것만 같은 벨벳 쿠션, A4 용지를 코팅한 메뉴판, 낡은 LP가 가득 꽂혀있는 책꽂이. 크리스티나는 내가 동경에 오면 꼭 같이 이 곳에 오고 싶다고 여러번 얘기했었다. 


이 카페에 오기 전 우린 저녁을 같이 먹었다. "How are things?" 의례적인 안부인사. 진부한 문장이지만 진솔한 대화였다. 매일 마주하는 크고 작은 모순과 괴리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단순히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습한 여름밤이었고, 저녁으로 먹은 스시는 정말 맛있었으니까.


나는 'isolation'이라는 단어를 썼다. 멋지게, 혹은 있어 보이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만, 단순히 말해 '옳다고 믿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아니, 이것 역시 너무 멋을 부린 표현이다. 좀더 뻔뻔하게 바꿔 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옳다. 가 진심에 가까운 표현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나를 고립시킨다. 누군가는 이를 아집이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꼰대라 손가락질 하겠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진리이고 그렇지 않다면 부조리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 만큼은 이를 진심을 다해 믿는다. 물론 이런 내가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이 옳다고 해서, 내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뫼르소가 진실만을 말한다고 해서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은, 그 누구보다 진실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가장 진실된 행동. 하지만 진실이 당신의 편을 늘 들어주지는 않는다.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p.28)'라서, 이따금씩은 거짓을 말해야 타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뫼르소의 진실인 동시에 사형선고의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카페에서 마지막 곡으로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이 흘러나왔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 시끄럽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잠깐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이내 나는 이 감정이 슬픔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들어올 때 앉아있던 백인 남자가 말을 걸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일어로 말을 건넸지만, 우리는 일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문을 나서기 전,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돌아보았을 때, 카페는 교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오르간 대신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 십자가의 그리스도 대신 놓여 있는 베토벤의 두상, 불편한 의자, 촛불처럼 타고있는 담배까지. 홍등가를 지나 도착한 이 컴컴한 카페야 말로 내 수준에 맞는 예배당일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뫼르소는 우리 분수에 맞는 그리스도라는 카뮈의 말이 생각났다. 


과연 그는 구원하고 싶을까? 

진실만을 말할 것 처럼 열변을 토했지만, 결국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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