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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Jun 05. 2017

[트레바리 문블루] 안녕 주정뱅이 by 권여선

불행하게 오래오래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주량이 자랑이고, 블랙아웃이 면죄부인 화법을 싫어한다. 풀린 눈, 커진 목청, 끼부리는 말투, 내일이면 까먹을 눈물, 순간의 진심, 시끄러운 감정, 토해내듯 하는 얘기, 그냥 그런 거.


오브제가 술인 소설이다. 다들 책을 읽으면서 술이 땡긴다고 하는데, 난 금연을 저번주에 시작해서 담배 생각이 많이 났다.


정서를 공유하는 그 사력을 다한 서사가 썼다. 수천, 수만의 경우의 수를 떠올렸던 나의 만약들이 있었다. 별거 아닌 척 웃어넘기지만 의심과 불안 속에서 환각에 가까운 꿈을 꾼 밤들이 있었다. 자유를 찾아 떠나 고독에 정착했던 일요일 낮이 있었다. 나에게 없었던 것이 너에게도 없어서 세상 사랑스러웠던 우리가 있었다. 섬세한 애정이 예민한 혐오가 된 청춘도 있었다.


난 기본적으로 사람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삶은 고되고, 다정하지 않다. 밤의 기쁨이 있다면 낮의 괴로움이 있는 법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없다. 난 거창한 혹은 사소한 행복을 꿈꾸지도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 무언가를 포기해버린 예민하고 마비된 사람들의 냄새를 맡았다. 삶의 단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것조차 힘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 것만 같은 그 냄새를. 


담배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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