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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Jan 26. 2017

[트레바리 문하나] 아무도 아닌 by 황정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자, 그럼 자기소개 먼저 부탁 드려요."

"어....저는.."


열아홉살, 유일하게 가고 싶었던 대학 면접에서의 첫 질문, 모두가 준비해 간다는 그 흔한 자기소개에서 어버버거린 나는 당연히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예민했던 10대 시절, 어리숙하지만 복잡했고, 서툴렀지만 진실했던 그 때의 나는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아무도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만약 이 책을 그때 읽었다면, 나는 아마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꽁꽁 숨겨놓은 일기장에 몇장이고 독후감을 쓰고도 모자라 특별히 좋았던 몇몇 구절을 옮겨적었을 것이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적어가며 친구라도 되는냥 공감과 위로의 말들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모두가 한 명 한 명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인 것 처럼. 마치 나는 언제까지고 그들을 귀하게 여겨줄 것 처럼.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다. 각기 다른 지옥과 천국을 보았고, 별 다를 것 없는 이들이 부르는 순수와 경험의 노래를 들었다. 손에 쥔 것들이 켜켜이 쌓였다. 조금은 천연덕스럽게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했다. 각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는 것이 유리할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내 취향과 필요에 부합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나를 알곤 했다. 마치 내가 누군가라도 되는 것 처럼.


아무도 아닐 수도 있고, 누군가일 수도 있다. 나도. 당신도. 이야기 속 그들도. 작가는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그 일상을 뒤흔들어댔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 선명한 것이 없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감정의 울림도, 문장의 날카로움도, 하나도 남아있지가 않다. 작가의 말을 빌어, '꾸준하게 난폭한 세계 속에서 두드려맞는 사람들'에 대한 이 잘 쓰여진 이야기들이 나에겐 청춘의 일상으로, 삶이라는 것을 살아가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수반되는 고통으로, 아직 겪지 못한 노년의 숙명 같은 외로움으로, 그래, 당연한 것, 아니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모두는 아무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것 처럼.

 

매정한가. 글쎄, 내가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너가 누구든, 아무도 아니든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폭포수 보다도 세차게 떨어지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 손에 조금 더 많은 것을 쥐게 된다 해도,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돈을 얼마를 벌든, 어떤 직장을 다니든, 무슨 학교를 나왔든 간에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여전히 거기서 거기다. 사람도 마찬가지. 나도, 너도, 그도, 그녀도, 별다를게 없다. 우리 모두는 번잡한 시장통에 엄마 손을 놓은 어린 아이처럼 길을 잃었고, 겁을 먹었으며, 섬약하기 그지없는 혼자다. 그때든, 지금이든, 언젠가든. 


피곤한 일상 가운데 지쳐가는 이들의 힘없는 노래같은 이야기. 삶의 한 가운데에서 모두가 한번쯤은 그 노래를 불러보았을 것이기에 나는 아무도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았다. 감정과 애정의 마비. 이는 그 어떤 희망이나 기대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노력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였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그 때의 내가 원했던 것들을 아둥바둥 이루어냈음에도, 그래봤자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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