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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Dec 02. 2016

[트레바리 문하나] 죄와 벌 by 도스토예프스키

당신의 구원은 어디에 있나요.

“가난은 죄가 아니라 진리이다.”


내일이 오지 않길 꿈꾸며 세 시간 혹은 네 시간 짜리 쪽잠을 청하던 대학생 시절엔 이 문장을 보물처럼 여겼다. 추운 겨울 밤, 덜덜 소리가 나는 맥북으로 과제를 마치고, 성격이 고약한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마주한 문장이었다.


그래서 <죄와 벌>은 내게 대학시절의 단상같은 책이다. 가난했고, 오만했고, 죽음을 포함해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믿었지만, 해야 하는 일들 앞에 매번 굴복하고 타협했던 시절. 그 때의 나는 내려앉을 것 같은 그 단칸방도, 살인이 일어난 그 아파트도, 더러운 골목과 차가운 강물까지도. 로자를 따라 성실하게 걸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그 때의 내가 몰랐던 것들을 이제와서 마주하는 건 참으로 흥미로운 경험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몇 달 전 첫 만남에서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정한 것이 마치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죄와 벌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시국에, 더이상 가난하지만은 않은 내가 읽는 이 책의 온도는 더 이상 그토록 뜨겁지 못하니 말이다.


그 때의 나는 극빈에 벼랑 끝으로 몰린 로쟈의 살인을 정당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저히 안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마주했을 때 섬광처럼 번뜩이는 추악한 욕구는, 나약한 인간을 지옥으로 밀어 떨어뜨리기 가장 강력한 트리거가 아니던가. 나라고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과연? 정말로?


하지만 다시 만난 로쟈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비범하다 믿는 치기 어린 청년이었다. ‘세상에 해로운 이를 처단하는 것은 타고난 사람의 숙명이지 죄가 아니다. 성실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타고나지 못한 자의 미덕이다.’ 라는 극단적인 선민주의이자 영웅주의를 변명 삼아 남은 삶을 집어삼킬 지옥불로 기꺼이 뛰어들고 말았으니.


결국 죄와 벌은 어떻게든 우리를 찾아내는 걸까. 책을 읽다가 집회에 다녀와서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미디어와 권력자가 예찬하는 평화적인 시위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거라는 그의 열변에서 로쟈를 보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그대로 무기력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 앞에서 나도 모르게, 추운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의 존속을 위한 단순한 범인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오한이 들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촛불일까. 총알일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요한복음 8:7


이 책이 세계적인 명작으로 남은 이유는 우리에게 절망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중 죄 앞에서 자유로운 이가 누가 있으며, 사실 인간으로서의 내가 다른 인간의 죄를 어찌 단죄하겠는가. 결국엔 소냐의 고결함이 로쟈를 구원한 것 처럼, 타인의 선함을 통해 나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택일 것이다. 


내 주위에도 소냐 같은 이들이 몇몇 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늘 회개하고 시인했다. 내가 고집을 부렸다고. 잘못했다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잘못된 것을 고치기 보다는 엎어버리고 싶었다고. 삶이 일그러지는 순간, 모든것을 뒤틀어서 바라보던 그 골목들에는 늘 그런 벗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신의 사람들.


끌어내릴 자의 곁에 이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지금 이 시국이 조금은 덜 어지러웠을까.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통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극도로 빛나게 표현하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역작이 와닿지 않을 정도로 내가 사는 세상이 소설 같다는 것에 쓴웃음이 난다. 적어도 작가가 믿는 구원의 모습은 내 삶에 너무나도 가깝게 닿아 있던데, 당장 다가올 2017년이 캄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오늘도 촛불을 주섬주섬 챙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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