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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Lyla Dec 31. 2021

작별을 기다리며

2021.12.31

어떤 만남들에는 영원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나의 과신 혹은 누군가의 확신이 만들어낸 환상은 달았고 또 따뜻했어요. 밤이 나를 안아주던 날들, 맨살로 마음을 데워주던 밤들, 흥얼거리던 노래와, 읊조리던 시, 간절하지는 않았던 기도, 무던해지던 대화, 건성이었던 울음, 전력을 다 했던 싸움, 필사적이었던 침묵, 그리고 평화로웠던 안녕.

생을 살아가다 보면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하잖아요. 그것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나이가 몇 살이든, 몸이 강하든, 마음이 약하든 간에 누구에게나 반드시 주어지는 과제 같은 거니까요. 물론 몇몇은 더 좋은 것을 골라야 하는 게 아쉬울 거고, 다른 몇몇은 덜 나쁜 것을 추려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하겠지만서도.

어떤 선택이든, 무언가 혹은 누군가와의 작별이 늘 따라오는 거 같다고 하면 너무 극적일까요.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쳤고, 태어나 어쩌면 처음으로 타인을 진심으로 용서했고, 그래서인지 나를 진짜로 소중히 여길 수 있었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아무 상관 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 중에 나를 제일 사랑하게 된 한 해와 작별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탓인지, 많이 울었고 또 아주 많이 웃었던 한 해였어요. 왠지 모르게 망설여지던 나만의 슬픈 장소들을 유쾌하고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됐고, 나의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워두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도, 그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불러도, 그에 맞춰 아무렇게나 춤을 춰도 괜찮아서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하기 싫은 건 내팽겨쳐둔 채 꾸준히 근면하고 나태했으며, 이루고자 한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가지는 오롯이 내 스스로 해낸 대견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날 더 사랑해주었고, 그만큼 나도 돌려줄 수 있어서 기뻤으며, 무엇보다 소설 비슷한 것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어 가슴이 아직도 설레는 한 해였어요.

어쩌면 반드시 일어나고 말았을 크고 작은 일들이 잔뜩 벌어진 한 해였지만 불행은 행보다 훨씬 흔한 것이라 나는 여전히 우리 모두 사이에서 별다를게 없는 범주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여전히 잘 먹고, 잘 걷고, 어느 때보다 잘 자고 있고, 총명하고 명랑한 나를 잘 지켜냈어요.

한 해의 마지막날, 세상의 많은 싸구려 이야기에 대수롭지 않게 등장하는 모두의 삶이 얼마나 귀애할 만한 것인지 조금은 떠올려봐요. 구태여 슬퍼할 이유를 찾지 않고, 가슴을 피고, 허리를 세우고 앉아 떳떳하게 생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내가 비관하지 않는 한 슬픔도 그 나름의 상냥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