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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Feb 20. 2022

1인분의 삶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06



A는 연희와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이었다. 공용 키친에서 마주쳐 인사를 건네면, 수줍게 웃으며 슥슥 감칠난 요리를 만들어 내던 A. A는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개월간 코리빙하우스에 살았다. 소소한 이야기들은 많이 주고받았지만, 연희와 A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건 A가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A는 연희에게 그간 자신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잔잔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기며 연희는 이곳에서 나를 더 많이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일종의 다짐을 했다.




A는 늘 가족들과 복작복작 살아오며 ‘1인분의 삶’을 꿈꿔왔지만, A에게 독립이라는 큰 산을 넘길만한 마땅한 명분은 없었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가족들과 으르렁대는 날엔 독립을 마음에 새기며 부동산 어플을 켰다가도 이것저것 따져보다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얌전히 꿈을 접었다. 그럴 때는 나름의 방법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호캉스를 가며 잠깐의 온전함을 누린 뒤 다시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만하면 삶의 균형은 그럭저럭 맞출 수 있었다. 문제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인을, 그리고 A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코로나19 사태가 1년이 넘어가고, 하물며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몸이 베베 꼬이기 시작할 무렵 A는 코리빙하우스를 알게 됐다. 코리빙하우스에 살아보는 걸 유럽 여행 가는 셈 친다면? 그렇게 1인분의 삶을 온전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코리빙하우스가 표방하는 ‘느슨한 연대’ 속에서 나의 안전과 개인적인 공간을 모두 보장받을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그렇게 A는 온전한 A만의 시공간을 위해 코리빙하우스에서 3개월을 보내기로 했다.



A의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마주하던 '안녕'



코리빙 하우스 입주 후 A는 자신의 우주를 만끽했다. 온전히 A의 취향을 더듬어 방을 꾸미고, 누구의 간섭 없이 새벽에 훌쩍 나가보기도 했다. 밤에는 좋아하는 조명을 켜두고 마음에 드는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와인 한 잔을 따라 마시며 일기를 쓰는 즐거운 청승을 떨다가, 연말에는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 소란히 추억을 쌓았다. 놀러온 친구들은 A의 방을 보며 ‘너답다'고 했다.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A가 한때 많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 부터 듣지 못했던 익숙하고 낯선 말이었다. 새삼 ‘오늘의 나는 이렇구나. 이게 나다운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A는 특히 오롯이 홀로 보낸 그 시간을 ‘후련함'이라고 표현했다. A가 여느 때처럼 그날의 일들을 일기로 써내려가고 있던 날이었다. 뜬금없이,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했던 옛 기억이 나 A는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기억이 흐릿할 정도로 오래 전 일인데도 그때의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으로 생생하게 젖어 들었고, 오늘의 일과 거리가 먼 그때의 일들을 울면서 적어 내려갔다고 했다. 다시금 찾아온 이 감정을 어떻게든 쏟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던 A. 안 좋았던 기억을 외면하고 적당히 넘겨버리려고 하니 털어지지 않고 마음에 남아있던 부스러기 감정들이었다. 비로소 혼자였기에 A는 그 부스러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A는 부스러기를 고요히 털어내고, 스스로 같은 상처를 입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A는 더이상 울면서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연희는 A가 누구나 한번쯤 꼭 필요한 시간을 만나고 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얼마 전, A는 코리빙하우스에서의 3개월을 마무리했다. A는 짧은 시간 동안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인연들을 위해 계란과 가장 좋아하는 음료를 공용 키친에 두고 떠났다. 그만의 작은 이별 선물이었다. 큰 기대 않고 혼자 여행 간다는 생각으로 입주했으나 예상 밖에 좋은 이웃들을 만나기도 했다. A는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덕이라고 말했다. 입주하는 날부터 아빠의 도움 없이 이사를 할 수 없었고, 옆집 이웃의 도움 없이는 인덕션을 켜지도 못했다. 적적할 때 나눈 이웃들과의 대화, 초대한 친구들과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A의 감정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휩쓸려 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A. A는 그래서 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이제야 정말로 혼자 설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A 했던 말들을 옮겨 적고 보니, 연희는 새삼 공용 키친에서  이상 A 인사를 나눌 일이 없다는  못내 섭섭해졌다. 이제는 공용 키친 대신 SNS 통해 A 만날  있지만, 그의 일상을 보다 보면 안부를 묻지 않아도 A 돌아간 자리에서도 즐겁게 자신의 세계를 짓고 있다는    있다. 아마 코리빙하우스에서의 지었던 그 세계를 안고 돌아간  아닐까. 코리빙하우스 , 앞으로  깊고 견고해질 A 세계가 궁금해진다.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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