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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Mar 12. 2022

공용 공간의 절대적 상식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10


코리빙하우스에서 살다 보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각자의 상식이 모두 다르다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공용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절대적 상식이 있을까.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모양새대로 살다가 한 공간에 모이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기 마련이다. 공용 공간의 이용 규칙은 그래서 존재하기도 한다. 이용하는 우리 모두가 공간을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하는 약속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하는 모두가 규칙을 상세하게 인지하고 있지 않거니와 명시된 규칙 이외엔 이용하는 각자의 해석이 더해지기에 공용 공간에 대한 동상이몽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연희와 테드가 거주하는 코리빙하우스에서 가장 크게 화제 되었던 이슈 중 하나는 누군가 공용 세탁기에 신발을 돌린 일이었다. 그것도 같은 신발이, 두 번이나 적발되었다. 모두가 분노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 신발의 주인(동일 인물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은 두 번이나 그런 걸로 보아 원래 살던 곳에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의 범주였을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일은 대다수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기에 ‘공용 세탁기에 신발을 넣지 말자!’는 합의에 이르는 건 매우 쉽고 빠르다. 그럼 이런 건 어떨까? 코시국으로 인해 모임 제한 인원이 4명인데, 코리빙하우스는 엄연히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니 6명이 모여도 괜찮은 걸까? 영업제한 시간은 10시까지인데, 이곳은 집이니 우리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도 될까? 각자 할 일을 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줌 미팅을 소리내어 진행해도 될까. 공용 냉장고에 누군가의 식재료가 기한이 지난 채 방치되어 있다면 버려도 되는 걸까. 이렇다 할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음쓰통에 버리는 게 당연하게 들리면서도, 저게 모두에게 당연했다면 이런 쪽지도 붙지 않았을 것 같다.



얼마 전엔 공용 키친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연희와 테드가 친구들과 소소하게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저녁, 이웃 한 분이 우리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주로 혼자 키친에서 요리를 하거나 식사를 하는데 이곳이 모임 장소로 자주 사용되어 주방을 사용하기가 불편하다고 하셨다. 이웃분 의견의 요지는 공용 주방은 모임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몇몇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여러 명이 모여 장시간 모임 장소로 사용하는 건 공용 주방의 취지와 맞지 않거니와 개인적으로 주방을 사용하기에도 힘들고 불편하다는 의견을 주셨다.


함께 있던 테드는 불편하게 해 미안하다며 먼저 말을 꺼냈다. 각을 잡고 모이는 게 아니라 한두 명씩 주방을 오며 가며 모이는 일이 일상다반사인데, 이 또한 코리빙의 자연스러운 특성이지 않겠냐며 조심스레 이웃 분에게 답변했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키친이므로 키친의 용도는 불만을 제기한 이웃 분의 해석이나 테드의 해석, 어느 한 방향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테드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지자 이웃 분도 차근차근 이야기해줘서 고맙다며 테드 말에도 동의한다고 했다. 키친을 어떻게 사용하든 선택의 영역이기도 한데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건지 오래 망설였으나, 불편한 말을 전해야 할 만큼 그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코리빙하우스의 특장점이 다르니 이해해달라는 말과 함께.



공용 공간 중에서도 공용 키친은 분란의 장소일 때가 많다. 그만큼 많은 입주민들이 가장 애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옳다거나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앞으론 어떻게 하겠다는 뚜렷한 합의점은 없었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에서 나의 상식과 이웃의 상식 모두 절대적일 수 없으니, 결국 이용하는 우리가 맞춰 나가야 하는 일이라는 것.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쿠션을 깔아야 하는 일이었다. 연희는 여전히 공용 공간에 친구들과 모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행동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지했던 순간이었다. 혹여나 불편해 할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그 불편함은 또 다른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더더욱 함께 공간을 사용할 이웃을 생각해야겠다는 반성을 했다. 같이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이자 또 결국 ‘집’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공용 공간에 대한 절대적 상식은 없고 동상이몽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우리가 따로 또 함께 사는 일의 시작이다.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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