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12
이웃들과 공용 키친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어느 날, 연희는 N을 처음 만났다. 두어 개의 도넛 박스를 들고는 “여기서 모임이 있다고 해서요!”라며 모르는 이들 사이로 주저 없이 걸어 들어와 모두에게 도넛을 나누어주던 N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 후로는 코리빙하우스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N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주로 무언가를 나누는 일이었다. 한두 번의 소소한 나눔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도, 개인에게도 이런저런 나눔과 선물을 하는 N을 보며, 연희는 코리빙하우스 안에서 만나는 새로운 유형의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N은 스쳐 지나가듯 자신의 이런 행동을 두고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며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N은 어떤 마음으로 나눔을 지속해왔던 걸까. 문득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N의 부모님은 콩 한 쪽이 있다면 나눠 먹을 게 아니라 아예 남을 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었다. 평소에 봉사도 자주 다니시는 두 분의 넘치는 사랑으로 자란 덕일까, N은 누군가 자신으로 인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자신의 행복이라고 했다. 이 나눔이 어떻게 돌아올까 생각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나눔. N에겐 그게 자연스럽게 동하는 마음일 뿐이었다.
N의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나눔은 코리빙하우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리빙하우스에서 ‘함께 산다’라는 건 어떤 건지 궁금해 무작정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도넛을 사들고 갔던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친해지는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밥은 먹었냐며 누군가의 끼니 안부를 묻고 함께 먹는 일은 N이 생각하는 중요한 나눔이었다. 혼자 살며 가장 챙기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밥을 먹어야 정이 든다는, 그 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먹는 일은 N에게도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다고 나누는 일이 마냥 기쁨으로만 돌아왔던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이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었다. 이전에도 N은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빵을 한 아름 사다 준 적이 있는데, 친구들은 그런 N의 행동을 불편해하며 네가 곁에서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빵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마치 이런 나눔을 면죄부처럼 사용하지 말라는 뉘앙스였다. 당시 여러 활동으로 시간을 낼 수 없던 상황이었기에 N은 나름의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한 건데,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걸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던 N.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나눔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나누는 게 기쁘면서도 조심스럽기도 했다.
서로 다른 층에 사는 J, 그리고 M과 모여 함께 이야기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N은 두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이번엔 또 어떤 나눔을 할까, 평소와 같은 고민을 두 사람에게 나누었다. 평소에도 친밀하게 지냈던 둘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서 나누는 N에게 조심스럽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아끼는 이웃 동생을 걱정하는 언니, 오빠의 마음이었다. 코리빙하우스라는 틀 안에 있기에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환경이지만, 굳이 무언가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 옆에 이렇게 있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네 마음은 충분히 다 안다는 말을 이곳에서 처음 들었다. 대학 시절에 친구들에게 들었던 말과는 다른 방향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해왔던 물질적인 나눔이 아닌 또 다른 나눔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 날, N은 크게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오늘도 N은 스콘을 나눴다. 정확히 말하자면 N에게 평소에 받은 나눔이 고맙다며 한 이웃이 N에게 스콘을 나눠줬고, N은 다시 더 많은 스콘을 사서 다른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여전히 나눔은 떼려야 뗄 수 없는 N의 일부다. 앞으로도 계속 나눔을 하겠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건강하게 마음에 초점을 맞춰 더 나누려고 한다고 말하는 N. 그리고 N은 그렇게 지난 연말, 이번에는 이웃과 함께 진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자원봉사를 나섰다. 그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진 않았지만 N은 그날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이 되어주며 많은 걸 느낀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코리빙하우스에서 플리마켓을 열고, 그 수익으로는 기부를 했다. 연희는 처음으로 나누는 기쁨이 무엇일까, 나는 과연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N을 보며 점점 궁금해졌다. 타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우선시했던 연희에게 N이 미친 선한 영향이었다. 아마 N의 나눔은 앞으로도 스스로 지금 가진 것과 상관없는, 지속가능한 나눔일 거다.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