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rystal clear Oct 04. 2019

191002

휴일 전날이라 들뜬 마음으로 퇴근하던 저녁이었다. 가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태풍 때문에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 추운 날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반팔 옷이라도 여며 입던 찰나에 한 동기 언니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했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해야할까 머리를 굴리던 찰나, 언니가 "현정아 너 추워?" 묻더니 가방에서 핫팩을 하나 꺼내서 주었다. "사무실에 우연히 있더라구. 너 써." 


고맙다며 받은 핫팩을 가방에 넣고, 집에 잠시 들렸다가 약속장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모임 사람들과 어김없이 신세 한탄과 푸념을 나눴다. 그래도 여전히, 다들 잘 살고 있었다. 방향이 같은 한 사람과 시청역쪽으로 걷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차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겨우 인도로 옮겼지만 아무리 깨워도 할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분들이 와주셨지만 우리가 부른 119는 생각보다 금방 오지 않아 계속 기다렸다. 빗줄기만 야속하게 거세지던 와중, 십분 정도 후에 구급차가 도착했고 할아버지가 실려가는 모습을 본 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흩어졌다.


버스를 탔는데 왠지 콧물이 나고 한기가 느껴져 다시 동기 언니가 준 핫팩을 꺼냈다. 핫팩을 손에 꼭 쥔 채 집으로 왔다. 우연한 만남이 베풀어 준 호의 덕분에 그날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기대하지 못한 호의를 받고, 다음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 이상한 날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스치고, 또 예상치 못한 도움을 주고 받고, 재밌는 것 같다.


아니 그래도, 할아버지는 무슨 연유로 비를 맞으며 차도에 쓰러져 있게 되신걸까. 경찰분은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다고 했는데,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나. 노숙자는 아니시고 일하는 분 같던데, 가족분들은 이걸 알까 궁금하기도 하고. 물론 나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영화 '벌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