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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Jan 20. 2021

Goodbye! 시나몬롤을 좋아하는 단골손님께

#cinnamonrolls #단골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골손님이 시나몬롤을 포장해 가면서 뒤돌더니 인사를 건넸다. 새해 인사를 먼저 웃으며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주문 세 건이 동시에 들어왔었고 시나몬롤 포장 봉투를 건네며 ‘안녕히 가세요’를 한 뒤 주방으로 달려가야 할 찰나에 인사를 전해 받았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답을 했어야 했는데, 바쁜 어조로 ‘네~’라고만 한 뒤에서야 내가 새해 인사를 받았구나를 깨달았다. 아무리 바빠도 고객으로부터 받은 진심 어린 인사에 대해 내 말에도 진심을 담아 건네고 싶은데 아직 한참 멀었구나 생각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방문하는 손님이다. 그녀가 중국에서 왔다고 알고 있었던 나는 며칠 뒤 그녀의 방문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제대로 하지 못했던 새해 인사를 성의를 다해 전달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이날도 시나몬롤을 포장 주문했다. 오븐에 데워 달라는 요청사항에 맞춰 4분 동안 데운 뒤 포장 봉투를 전달하며 담소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중국이 아닌 싱가포르에서 왔었고 어렸을 적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니며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투에서는 중국어 억양보다는 영어스러운 발음이 들렸던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래도 중국어가 모국어라 했다. 한때 중국어를 배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매해 초급만 반복해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더니, 본인도 중국어는 너무 어렵다며 동조했다. 그러면서 대뜸 2월 경에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마치 꼭 그 말을 전달해야 했던 사람처럼 말이다. 부산에서의 대학원을 마치고 올라가는데 부산이 좋았다며, 조금 전 나에게서 건네받았던 빵 봉투를 들어 올리며 이것 또한 그리울 것이라고 했다.


좋은 계기로 부산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순간 내 마음은 서늘해졌다. 이날 처음으로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주 그녀에게 말을 걸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 그녀가 매장의 음식과 음료를 사 가지고 가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로부터 받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았었나 보다. 


"서울은 여기와는 다른 점도, 좋은 점도 많을 거예요. 부산도 놀러 오세요."


영어, 중국어에 이어 한국어도 정말 잘하는 커트 단발머리의 아담한 그녀에게서 뿜어 나오는 밝은 에너지가 늘 좋았다. 가끔은 중국인 친구와 방문하여 시나몬롤을 하나씩 사가는 모습이 나의 대학시절을 떠오르게 했고,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 


요즘 나는 매장으로 반려견 맥스를 데리고 나온다. 그녀가 맥스를 보면서 본가에 있는 본인의 강아지도 리트리버라며 이뻐해 주던 장면도 스쳐 지나간다.


오후 5시경, 매장 문을 닫고 맥스와 산책을 나간다. 킁킁 거리며 나무와 흙과 벽돌 냄새를 맡고 있는 와중에 3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목도리를 하고 큰 외투를 걸쳐 입은 여자가 걸어온다. 우리 시나몬롤 단골손님으로 보인다. 항상 밝게 인사를 건네줬던 그녀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마스크를 쓴 것을 감안하여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 소리에 맥스도 고개를 들어 꼬리를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그녀가 휑 지나친다.


맥스가 나를 올려다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어?’


다른 사람이다. 커트 단발에 아담한 키면 다 그녀라고 착각을 할 만큼의 지경까지 이른 것일까. 소통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때로는 즐겁다 못해 그립고 서툰 상상마저.


그녀는 서울로 상경하기 전, 몇 차례 더 매장을 방문하여 시나몬롤을 찾을 것이다. 매 회, 조금씩 작별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 부산을 떠나는 일정이 다가온다는 것과 시나몬롤을 판매하는 나의 매장에도 더 이상의 방문이 어렵다는 얘기를 미리 해준 그녀가 고맙다. 헤어짐이 오기까지 만남에 최선을 다해야지. 2021년 1월이 선물한, 어쩌면 한 해를 살아갈 첫번째 결단.



글, 사진 Se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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