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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Oct 02. 2018

수기

우울증 환자의. 1.

별 다른 일 없이 또 하루가 흘러 갔고 이제는 새벽 두시가 다가오고 있다. 잘 준비를 하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다보면 기어코 잠에 들기 어려워진다. 하루를 엉망진창으로 보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이고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해 긴 밤동안 분을 삭여야 한다. 


아침이 오면 나는 또 어제의 나를 저주할 것이다. 왜 일찍 자지 않았냐고. 어제의 나는 어제 저녁의 나를 저주하고 그 전날의 나를 저주하고.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내가 태어난 것이 잘못이 되는 것이다. 아니야. 나는 머리를 털어야 한다. 아름답지 못해도 살아가야 한다. 사실 죽는 것이 너무 무서워 나는 매일 매일 살아 있다. 나는 말 그대로 세상에 집어 던져진 채 깨어났고,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자각했던 유년기 시절부터 나는 심리적인 이유와 비염으로 호흡 곤란을 겪어 왔다. 숨을 쉰다는 사실조차도 생경해서, 살아 있는 동안의 모든 노력을 숨 쉬는 데에 쏟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나는 병자가 되었다.


나는 자라서 내 병과 아픔과 창백한 화장과 글쓰기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고 그 구절을 소비해버렸다.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늘. 자기한테 엄격하고 남한테 관대한 상을 스스로에게 투영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없이 자기에게 관대한 사람으로 커버렸다. 나는 나의 죄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래서. 


내 하찮은 죄의 목록들을 길게 암송하고 나면 나는 달리 숨쉴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그래서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차라리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남은 삶을 욕망으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고, 먹고, 마시고, 피우고, 죽이고, 살리고, 때리고, 맞고, 등등등. 머리를 뿌연 연기로 채우고서야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목록은, 파란의 메모는 머리에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우스운 글을 삼키면서, 웃긴 사람과 우스운 사람의 차이를 구분하면서, 어쨌든 몇 번이고 글을 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 저 밖에 내가 둥둥 떠다니는 형체로 무한히 취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비싼 돈과 건강을 축내고서 아주 잠깐 밖에 맛볼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자기의 선택이다.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아주 볼품 없고 타인에게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는 글을. 나 스스로를 녹여내어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기억을 붙잡겠다고 했다. 자판을 두들기는 손이 점점 느려지고, 나는 연거푸 술잔을 기울인다. 모니터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지만, 기분은 그다지 헛헛하지 않다. 만두, 냉면, 술국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잠을 청한다. 생각한다. 나는 무엇인가? 존재는 무엇인가? 우스꽝스러운 질문으로 나를 마감한다. 나는 딱 그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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