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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리 Dec 14. 2022

소설을 쓰고 나서

감성을 실은 조각글 한 편

너무 슬픈 소설을 써버렸다. 초고 마지막 문장을 완성한 후 콧등이 시큰해졌다. 소설은 살인과 자살로 끝났다. 인물들에게 너무 빠져버려 감정이 넘쳤다. 아마도 내일 날이 밝으면 제 정신이 돌아와 소설 전체를 삭제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 등장 인물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해서 조금은 울고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이들의 외로움, 외로움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자발적 고립이니, 오타쿠니 하는 시대에 소통 못하는 것쯤 뭐 대수냐 싶을 수도 있으니 소설의 무게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많이 감성적이 되어버렸다. 물러터져서 등장인물들을 이끌어 나가지 못하고 그들의 절망에 압도 당해버린 느낌이다.      


휴대폰, 소셜미디어, 인터넷으로 어느 때보다 소통이 원활한 시대에 모순되게도 우리는 소통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이 원활해진 것에 비례해 사회공포증은 현대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미하게나마 많이 앓고 있는 정신적 장애이기도 하다. 건물마다 카페가 넘쳐 나고 카페마다 사람들로 넘쳐 나지만, 정작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가 닿고 있을까? 요란스럽고 시끄러운 소통의 잔치 속에 정작 알맹이는 없고 서로에 대한 두려움, 공허한 관계들이 넘쳐난다. 오늘 나 참 많이 비관적이다.      


슬픈 소설을 쓴 후라서 그럴 것이다. 사고와 감정이 극단에 치우쳐 있다. 이 글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객관성이 떨어진다 해도 나는 극단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고, 오늘 마지막 장면을 죽음으로 마감하며 그 끝에 가 닿았다. 절망의 바닥. 하지만, 바닥에 가라 앉고서야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표피화되고, 피상적이 되어 버린 관계에 대한 극단의 성찰이 보다 진지한 관계성 회복으로 한 발 다가가는 디딤돌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      


소설을 끝내고 난 후 넘치는 감정을 짧은 글에 담아 오늘 밤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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