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알면 그 나라의 문화가 보인다.
이건 정말 불변의 진리다.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는 따로 학습하지 않더라도 따라오게 되어있다. 이는 언어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을 할 텐데, 어떤 언어든 100% 번역이 가능한 단어를 찾기는 어렵다는 사실에서 그 출발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나라의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정도의 실력이 되면 자연스레 한국어로 사용하는 단어를 그 나라의 언어로 완벽하게 바꿔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내 좌절하고 만다. 실력이 모자란 것일까? 글쎄. 정확히는 그 나라에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개념의 단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어보자.
한국인들의 '정情'. 이걸 영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사전에 찾아보면 affection, attachment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나온다. 하지만 그걸로는 뭔가 부족하고 허전한 느낌이다. 그건 바로 정이라는 마음은 한국인들에게만 있는 정서이기 때문에 이것과 상응하는 단어를 다른 나라 언어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정이라는 건 사람을 향한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건 사소한 한국 문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일례로, 커피숍에서 가방이나 노트북, 핸드폰 등을 올려두고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커피를 주문하러 가도 소지품들이 그대로 있는 신기한 문화. 이건 정말 한국에서만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또 하나. 이건 한국에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왔던 남자 친구(프랑스인)와의 일화인데, 중고 핸드폰을 사러 갔을 때의 일이다. 직거래를 하기로 하고 만나고 물품 확인 후 구입을 하려는데 아뿔싸! 지갑을 집에 두고 온 상황. 죄송하다며 집에 가서 바로 계좌이체를 해드리겠다고 하며 쿨거래를 하고 헤어졌는데 어안이 벙벙해져 나를 쳐다보던 남자 친구. 도대체 너를 뭘 믿고 덥석 물건을 주냐는 것이다. 이체를 안 해주면 끝 아니냐며. 하지만 한국인끼리의 정서상 이건 당연히 돈을 보내주는 거라고 하자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인들은 정말 착하다고 칭찬일색이었다. (물론 집에 가자마자 계좌이체를 해드렸다.)
얼굴을 한번 보면 뭔가 믿음이 가는 마음. 통성명을 하고 나면 한번 본 사이라도 뭔가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 그런 모든 사소한 마음들이 다 한국의 정 문화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단어를 보면 그 나라에서 기반한 전반적인 정서와 문화를 공부할 수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에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문화 체험은 같은 뜻으로 통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로 느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A piece of cake = 식은 죽 먹기.
It'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 = 이미 엎질러진 물.
일맥상통하지만 해당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른 걸 볼 수 있다. 쌀이 주식인 우리에게는 죽, 밀이 주식인 미국에서는 케이크. 밀가루 음식과 찰떡궁합인 우유를 마시는 문화와 쌀과 환상의 짝꿍인 물을 마시는 우리 문화.
사소한 부분들이지만 굳이 그 나라에 가지 않더라도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그 나라의 언어를 통해서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사실.
서론이 너무 길었나?
워킹홀리데이의 본질적인 목적인 문화 체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언어가 불어인 만큼 프랑스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어를 공부하면 제일 좋지만, 파리에서 워홀을 시작한다면 솔직히 영어만 잘해도 살만은 하다. 일상생활에 문제없을 정도로 영어를 한다면 굳이 1년밖에 되지 않는 워홀 기간 동안 어학원을 다닐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정도의 영어가 되지 않는다면 꼭 불어를 공부하고 출국을 하길 권한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은 영어권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불어권에서는 힘들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를 하는 나라에 멘땅에 헤딩이라니!
어찌어찌 1년을 보내고 귀국을 할 순 있을진 몰라도, 그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문화를 다 놓치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는 되지 않더라도 기초적인 문법 정도는 어느 정도 익히고 가면 가서 현지 적응도 누구보다 빠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 (나도 출국 전 기초반 3개월로 기본 문법은 떼고 갔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너무 좋지 않으니,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하길 바란다. 살기 위해 현지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불어가 일취월장했음을(주먹구구식이긴 하겠지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워홀을 즐기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뭐든 적당히! 프랑스에 가기 전부터 겁먹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