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5회를 맞이하는 전주영화제는 이번에 세 번째 참여했는데요. 매년 제가 선호하는 영역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영화제가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특별한 영화들을 본 게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리마스터링된 영화들을 세편 봤는데요. 칸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 퀴어영화라는 캐나다 영화, <겨울은 오히려 따듯했다>는 1965년작으로 1960대 북미지역 대학생들의 문화와 분위기, 관심사를 볼 수 있었고요. 당시에는 동성애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매우 약하게 표현되지만 그래서 동성간의 끌림이 더 세련되게 표현된 느낌이 있습니다. 세련된 유머코드도 있고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거나 뒤떨어지지 않는 멋진 영화였어요. 겨울은 오히려 따듯했다는 엘리엇의 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의 한 구절입니다.
두번째는 포르투칼,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아브라함의 계곡>으로 러닝 타임이 무려 203분짜리입니다. 1800년대를 배경으로 시작하면서 보수에서 진보로 나아가는 유럽사회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대사가 좋습니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 독특하고 자유롭고 한번 보면 빠져드는 매력을 지닌 한 여성을 통해서 변해가는 사회인식을 매우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어요.
세번째는 프랑스의 거장, 자크 리베트 감독이 만든 <미치광이 같은 사랑>입니다. 무려 4시간 반짜리 영화인데요. 60년대 변화를 겪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불안정한 모습을 사랑을 통해 묘사한 영화입니다. 너무 길어 힘들었지만 완주하는 데 성공해서 뿌듯합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유명한 영화 <파리, 텍사스>도 올해의 프로그래머 허진호 감독이 선택한 영화라서 재상영됐습니다. 1987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20대때 영화관에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잘 다가오지 않았는데 그후 수십년이 지나 나이가 들어 영화관에서 다시 만나니 주인공들의 느낌이 가슴 속에 저며듭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 자체로 참 많은 걸 이해하게 만드는군요. 나스타샤 킨스키의 젊은 시절 얼굴은 요즈음 배우들과는 그 느낌이 참 많이 다르네요.^^ 영화를 다시 본다는 행위 자체가 큰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