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6년을 살아온 할머니이다. 100세 시대이니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고도 하고 심지어 유엔에서 정하기는 이제 중년을 시작하는 나이라고도 한다.
일의 발단은 단순했다. 실제 외할머니가 되어 손자를 돌보는 4년 동안 한국어교원 3급 자격시험을 두 번 치렀는데 아주 근소한 점수 차로 떨어졌다. 아쉬웠으나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시험 준비 시간을 따로 마련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이렇게 막연하게 보내는 몇 년 동안 사이버대학교 등록을 했더라면 새로운 교수법의 흐름들도 배우고 자격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생각을 왜 이제야! 그렇게 해서 모교 사이버캠퍼스에 편입을 했고 등록까지 마쳤다. 며칠 후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정말 한국어 교수법을 배우고 싶은가? 배워서 뭐 할 건데? 자격증을 받아 뭐 할 건데? 우즈베크에서 머무는 동안 최선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을 상쇄하기 위한 마음의 문제 같기도 한데 그걸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다른 까닭이라도 있을까?
고민이 계속됐고 깊어졌다.
그러다가 아주 어린 시절 기억 한 장면이 소환됐다 ㅠㅠ
큰 형부의 탄식 장면!
도대체 알파벳이라도 알아야 취직을 시키든 하지 ㅠㅠㅠ
초등학교를 졸업식에 참석하지도 않고 겨우 마친 열세 살 소녀는 셋집 사는 큰언니 집에 기식하러 갔나 보다. 다섯 명의 조카들까지 모여 사는 궁핍한 살림살이에 큰언니 내외는 어쩌자고 어린 처제까지 오게 했는지 ㅠㅠ
늦게 낳은 어린 딸을 더 교육시킬 수 없는 늙은 내 아버지가 형부의 장인어른이었고 착한 큰언니에게는 배다른 동생 한 명이라도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는 거룩한 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장면이 깊고 깊은 무의식에 50여 년이나 짱 박혀 있다가 불현듯 떠오르다니! 타인어른의 탄식 한마디가 이렇게 내 인생을 잡고 흔들었구나 ㅠㅠ 그렇게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문자세상에서 헤매었을까? 이제 나는 진정 해방되어서 내가 선택한 공부를 목적 없이 해낼 수 있을까?
웬만한 기억들은 작년에 치유글쓰기를 하면서 떠올랐고 걔 중에는 행복한 유년의 기억도 상당했는데 아직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