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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희 Jan 12. 2024

인상파 미술을 탄생케 한 물건들이 있다고?

<인상파 미술관, 찬란하게 스미다>

들어가며


추억의 다락방 미술관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부엌 위에 천장이 낮은 다락방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곧장 다락방으로 난 계단을 부리나케 기어 올라갔다. 계단이 높아 정말로 기어올라야 했다. 혼자 그림 그리고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내게 그 다락방은 아틀리에이자 미술관이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한 천 원 정도 했던 것 같은 문고판 화집에서 뜯어낸 인상파 그림을 한쪽 벽에 빼곡히 붙여서 나만의 비밀스럽고 소중한 <다락방 미술관>으로 꾸몄다. 그렇게 그림에 빠져들었던 소녀는 커서 홍대 미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화가의 삶도 경험했다.


그림말고도 다방면으로 기웃거리며 열정을 분산하던 삶을 살다가 지금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이런저런 책을 펴내고 있다. 그러면서 언젠가 미술책을 출간하겠다는 다짐을 마음 어딘가에 오래 품었다. 참 오래도 걸린 끝에 마침내 <인상파 미술관>을 완성했다. 여태껏 내가 만들었던 어떤 책들보다 방대한 이 책을 쓰면서 벅차고 설레는 마음으로 반년 가끼이 보냈다. 이제 글을 다듬고 그림을 더 넣거나 빼면서 만듦새를 단단하게 하려 한다. 그림 자료를 수집하면서 내가 수없이 "진짜 아름답다!"라고 외쳤듯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찬란하게 스미는 <인상파 미술관>이 되길 바란다.





첫 번째 이야기


인상파를 탄생하게 한 역사적인 물건들


19세기 파리의 미술계는 <살롱전>을 중심으로 실내에서 매끈하게 다듬어 그리던 고전적인 화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세상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몇몇 젊은 화가들이 희한한 실험에 심취해 있었다. 그들은 화구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는 영롱하게 빛나는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풍경을 휘갈기듯 캔버스에 담았다. 그 젊은 화가들은 돌연변이처럼 나타나서 서서히 파리 미술계에 스며들다가 결국에는 미술사를 아예 바꿔버린다.  

이들 인상파 화가가 야외에서 빛의 변화를 포착해서 곧바로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뒷받침한 역사적인 발명품들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물건들이지만, 이것들이 없었다면 인상파 미술은 탄생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크고 작은 유용한 물건들이 출현했기에 지금 우리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인상파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인상파 미술의 태동을 촉발한 역사적인 물건들을 소개하겠다. 




01 짜서 쓰는 튜브 물감의 발명 

1841년에 유화 물감을 담는 새로운 용기가 발명된다.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짜서 쓸 수 있는 얇은 금속으로 된 튜브>다. 영국에 살던 미국의 초상화가 존 고프 랜드(John Goffe Rand)가 발명해서 특허를 등록하고 윈저와 뉴턴(Winsor & Newton) 사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돼지 방광에 넣어 묶어서 들고  다니면서 썼다. 그 유화 물감은 쉽게 말라버렸고 사용하기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튜브 물감이 대량 생산되면서 물감이 굳어서 못쓰게 되는 일이 없이 오래 보관하게 되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물감은 끈적끈적한 점성의 정도와 색상의 농도가 일정해서 화가들이 직접 안료를 기름에 섞어서 만들어 쓰던 물감보다 질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물감을 휴대하기가 여간 편해진 것이 아니었다. 튜브 물감이 고안되고 나서 편리한 화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명된다. 





02 화학의 발전으로 탄생한 새로운 색들

19세기 중반에 산업이 더욱 발전하면서 새로운 산업용 안료가 개발되었다.  너무 비싸서 사용할 수 없었거나 그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안료가 발명되었다. 화가들은 대량 생산된 새로운 색상의 물감을 쉽게 구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밝고 선명한 색상의 물감이 그것도 튜브에 담긴 채 판매되었으니 인상파 화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자연에서 직접 눈으로 본 찬란한 색을 생생하게 화폭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코발트블루(Cobalt Blue), 울트라마린(Ultramarine, 군청색), 세룰리안 블루(Cerulean Blue, 밝은 청색), 레몬 옐로(Lemon Yellow, 밝은 노란색), 징크 화이트(Zinc White, 아연 백색), 비리디안 그린(Viridian Green , 청록색) 등이 19세기에 나타난 인공 물감이다.



왼쪽에 있는 르누아르의 《우산》은 코발트블루를 사용해서 그리다가 울트라마린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오른쪽에 있는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은 세룰리안 블루와 비리디안 그린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03 규격화되어 대량 생산된 캔버스 

요즘 화방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흰색 젯소를 칠한 캔버스는 19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규격화된 크기로 제작되어 판매된다. 튜브에 담긴 유화 물감을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 윈저와 뉴턴 사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캔버스도 생산한다. 모네는 원하는 크기로 맞춤 제작을 맡기기도 했다. 


돛으로 쓰이던 캔버스(canvas)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에서 시작해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전에는 주로 단단한 오크 나무판이나 회반죽을 칠한 벽에 그림을 그렸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벽화들이 회반죽을 칠한 벽에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나무판은 온도나 습도에 몹시 민감해서 쉬이 갈라지고 휘는 데다가 들고 다니기엔 무거운 재료였다. 나무틀에 면이나 리넨을 팽팽하게 당겨서 씌운 캔버스는 나무판에 비해 외부 환경에 쉬이 변형되지 않는 데다가 무엇보다 가벼웠다. 인상파 화가들은 가벼운 캔버스를 몇 개든지 들고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껍고 단단한 판지에 캔버스 천을 붙이고 제소를 칠한 캔버스 보드도 생산된다. 캔버스보다 가격이 싸서 가난한 화가들에게는 단비 같은 재료였다. 




04 납작붓의 발명 

인류가 붓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68년에 발굴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붓으로 그려졌다. 고대에는 나뭇가지나 동물의 뼈에 깃털이나 돼지 같은 동물의 털을 묶어서 붓을 만들었다. 중세 시대에는 수도사들이 정교한 손재주로 붓을 생산했다. 17세기 말까지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직접 붓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18세기에는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수많은 직업이 생겨나는데, 붓이나 빗을 만드는 직업(brush maker)도 그때 생겼다. 덕분에 화가들은 공장에서 생산된 붓을 손쉽게 구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미술사를 획기적으로 바꾸게 될 작은 철물 하나가 발명된다. 바로 붓의 손잡이와 털을 연결하는 쇠로 된 테(ferrule)다. 1862년에 금속으로 된 테를 납작하게 눌러서 털을 고정한 <납작붓>이 역사상 처음으로 탄생하게 된다. 



납작붓을 사용하면서 인상파 화가들은 붓을 빠르게 놀리게 되었다. 짧고 거친 붓질로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의 인상과 빛을 즉각적으로 화폭에 표현했다. 붓자국을 남기지 않고 매끄럽게 문질러 그리는 화풍이 점령하던 당시에 거친 붓자국을 그대로 남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미숙하고 조악한 스케치 정도로 폄하된다. 그런 평론가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인상파 화풍은 머지않아 프랑스 주류 미술계이던 <파리 살롱전>에까지 스며든다.


가난한 젊은 화가였던 모네와 르누아르는 센 강가에 있던 《라 그르누예르》에 며칠 머무르면서 함께 그림을 그린다. 두 화가는 나란히 캔버스를 펼치고 일렁이는 물결과 물 위에 비친 빛을 빠르게 그려나간다. 둘은 그렇게 납작붓으로 짧고 거친 선을 그어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빠르게 표현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05 휴대용 이젤과 기차의 보급

이 시기에 다리를 접어서 가방처럼 멜 수 있는 화구 박스가 딸린 일체형 이젤이 인기를 끈다. 때마침 기차가 파리 근교 전역으로 연결되면서 휴대용 화구를 메고 제법 먼 야외로까지 편리하게 그림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된다. 프랑스어로 장면의 색감과 분위기를 빠르게 대충 그린 채색 스케치를 일컫는 포샤드(pochade)는 당시에 ‘야외에서 그리는 유화 스케치’를 이르는 말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 야외용 프랑스 이젤은 영어로 포샤드 박스(pochade box)로 불린다.


모네는 르누아르와 자주 그림 여행을 떠나면서 인상파의 표현 기법을 연구했고, 피사로는 홀로 집 안에만 머물던 세잔을 데리고 그림 여행을 다니면서 인상파 화풍을 소개했다. 피사로는 집 근처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바퀴가 달린 이동식 이젤을 사용하기도 했다.




ⓒ박영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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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인상파 미술관> 종이책 출간을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큰 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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