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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Dec 04. 2023

《몽땅 받아들이는 일》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몇 년 전, 일본 선교사님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처음 일본에서 전도할 때,

의외로 쉽게 복음을 받아들여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수님만 믿은 게 아니라,

기존의 믿고 있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 더 추가해서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무엇과 겸해서 믿기는 쉽습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내가 마음에 드는 신을 골라서 믿으면 그만이니까요.


이런 믿음에는 절대적인 충성도,

인격적인 교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비즈니스 파트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전부를 믿는다는 뜻이지,

그 가운데 맘에 드는 것만

골라서 믿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앙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 믿는 일입니다.

오직 그분께만 내 전부를 오롯이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도 은연중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겸하여 믿으면서도,

좋은 신앙이라는 착각 속에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과 겸하여 무언가를 섬기면서도,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고 예배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믿음이 아닌 미신이며,

신앙이 아닌 종교에 지나지 않은 일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조금’ 혹은 ‘많이’라는 표현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조금’과 ‘많이’라는 말에는

예수님을 전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부만 내어주신 게 아닙니다.

전부를 남김없이 다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전부를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전부로 믿지 않으면,

그럴듯한 것들에 기웃거리게 됩니다.

자꾸 겸하여 믿고 싶어집니다.

다른 것을 덧대거나 추가하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에게 우리가 전부라면,

우리도 예수님에게 전부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부를 주셨다면,

우리 역시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믿음은 오직 유일한 예수님을 몽땅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되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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