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미덕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온 사람은, 자기 검열이 심하다. 주변에서 칭찬이라도 들을라치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손사래부터 친다. 게다가 무엇을 하든지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저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어요. 그건 제 전공이 아니라서요. 제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러세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사람이 꼴불견이라면, 칭찬과 인정을 과하게 거부하는 사람 더 나아가 자기를 깎아내리는 사람은 꼴값 떠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겸손한 것과 겸손을 떠는 건 엄연히 다르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다? 더 나은 칭찬을 기대한다? 그건 겸손한 게 아니라 겸손을 떤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대부분 겸손을 떨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말해주는 걸 은근히 기다리니 말이다. 간혹 마음을 듬뿍 담아 칭찬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정말 사람 무안해진다. 다음에 칭찬할 일이 있어도, 이전에 보인 반응 때문에 쉬쉬하며 그만둔다. 주위를 보면 충분히 그 일을 맡을 자질과 능력이 충분한데도, 한사코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자기는 별 볼 일 없다고 자기 비하도 서슴지 않으면서 말이다. “저는 그만한 감이 아닙니다. 에이,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이런 모습은 지난날 내 모습이기도 했다. 칭찬을 받는 일이 적었던 탓인지, 칭찬을 들으면 그대로 받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거나 손사래 치면서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칭찬을 하는 사람이나 그걸 받는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잠시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속으로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휴,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게 겸손한 사람이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겸손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은 칭찬을 고마운 마음으로 흔쾌히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꺼이 칭찬받았건만, 결코 재수 없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건방 떠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받아낼 줄 아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누구나 기회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 많던 기회가 어쩌면 겸손을 떨어서 멀리 달아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그동안 기회를 날려버리고 내던져버린 일만 해도 한 트럭쯤 될 듯싶다. “아, 아까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면 발끈한다. 반면 정작 자기가 자신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자기가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제는 “아휴,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에서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대답한다. 상대의 진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겸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배운다. 또 그게 진짜 미덕이라는 것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