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일기 #3 호흡하기, 하체 힘주기, 깍지끌기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빈활 당기기를 했다.
빈활 당기기 연습은 많이 할 수록 좋다고 한다.
준비자세-거궁-밀며 당기기- 만작에서 5초 버티기 무한 반복 루트
빈활을 당길 때마다 5초가 5분처럼 느껴지는 매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시간에는 세 손가락을 이용해서 시위를 당겼는데, 이젠 엄지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시위를 당긴다.
우리는 교육용으로 된 플라스틱 암깍지를 끼는데 내 깍지 호수는 16호다.
나중에는 엄지가 커져서 호수가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세 손가락으로 당기던 걸 엄지에 몰빵하려니 너무너무 힘들었다. 내 엄지마디가 떨어져 나가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됐다.
이번 시간엔 호흡과 힘주기에 대해서 배웠다. 국궁은 복식호흡을 사용한다. 숨을 내쉬면서 활을 들어올리고(거궁), 이때 발끝부터 엉덩이까지 힘을 빡 준다. 그리고 다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밀며 당기기'를 한다. 5초간 버티고 시위를 놓으면서 다시 숨을 내쉰다.
확실히 지난번보다 고려할게 많아졌다. 머리가 복잡하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떠올리며 따라 해본다.
선생님은 지금이 아니면 자세 연습을 제대로 할 시간이 없다고 하셨다.
연습할 때는 목표가 눈앞에 없으니 자세에 집중할 수 있지만 눈앞에 과녁이 놓이면 지금까지 했던 자세가 다 틀어지고, 오로지 맞추려고만 하게 된다고. 맞췄냐 안 맞췄냐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본자세가 중요한 거라고 하셨다.
"자세만 제대로 되어있다면 눈을 감아도, 안개가 껴도 충분히 과녁을 맞힐 수 있어요."
이 말이 좀 멋있게 느껴져서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한 사람씩 빈활을 당기며 자세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나는 중구미가 잘 안 엎어져서 사진을 못 찍었다.
*중구미란 줌손의 팔꿈치 아래를 말한다.('중금이'인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중구미'였다.)
중구미를 제대로 엎어야 활을 미는 팔이 굽혀지지 않고 고정이 잘 된다. 또한, 화살이 나갈 때 시위가 치고 지나가지 않는다. 엎으려고 할 때마다 힘이 달려서 어깨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진 안 찍고 슬쩍 넘어가보려 했지만 공평하신 선생님은 내가 중구미를 힘내서 엎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다. 당이 떨어져서 그런다며 사탕까지 주시고ㅠㅠㅠㅠㅠ 결국 나는 해냈다..! 덕분에 얼굴이 흑토마토가 됐음
이어서 줌손과 깍지손 짜기, 그리고 오늬에 살 먹이는 법까지 배웠다.
"중구미는 못해도 짜기는 잘하네요."
중구미 못 엎고 울적해있던 나였는데, 짜기는 잘해서 다행이다. 잘하는 게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헥헥 머리 터지는 날이었다. 다음 시간에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