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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May 06. 2019

프롤로그:밍글라바 미얀마

여행자의 나라 미얀마 그 숨겨진 얼굴들

프롤로그

‘밍글라바 미얀마!(Mingala-Ba Myanmar)’


‘올라! 쿠바(Hola Cuba)’

어쩌면 지금쯤 탱고 음악이 흐르는 아바나 거리를 걷고 있어야 했다. 진한 커피향에 취해 흔들의자에 팔을 걸치고 헤밍웨이를 읽으며 카리브해 해풍을 음미하고 있어야 했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자유여행지는 쿠바였다. 바로 사르트르가 금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칭송했던 내 삶의 멘토이자 우상인 ‘체 게바라’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몸은 후끈후끈한 습기가 얼굴에 착착 달라 붙는 미얀마의 아열대 바람과 대면하고 있다. 


초저녁 저녁노을이 사라질 즈음, 들뜬 사람들을 태운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선회하며 날아올랐다. 비행기는 반나절을 소리 없이 날았다. 깜빡 선잠이 든 사이 기장의 안내방송이 잠을 깨운다. 창 덮개를 올리고 아래를 바라본다. 떨어진 꽃잎처럼 군데군데 흩어진 수줍은 양곤의 불빛은 5백만이 거주하는 거대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수수하다. 사람들이 잠든 밤, 나는 그렇게 조용히 미얀마에 스며들었다.


공항에 발을 딛자 마자 몇 년 전 기억들이 습한 아열대 공기를 타고 고스란히 올라왔다. 5년만이다. 공항은 여전히 택시 호객꾼들이 북적이며 시끌벅쩍하다. 호텔까지 가격을 물으니 처음 온 여행자인 줄 아는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불편한 재회의 인사를 건넨다. 짜증이 훅 올라왔지만 ‘이 한 건을 위해 얼마를 기다렸을까’하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택시기사와 호객을 했던 조수 청년은 가는 내내 봉 만났다는 듯 짧은 영어를 쏟아 내며 과잉 친절을 던진다. 택시를 타니 불과 10분도 안되는 거리였다. 거스름 돈이 없다는 핑계로 팁까지 요구하는 기사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삥뜯기 듯 계산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호텔로 들어 섰다. 늦은 밤 졸다 깬 직원들은 환한 미소로 이방인을 반겼다. 친절한 미얀마 미소를 보는 순간 잠시 삐진 마음은 금새 사라졌다.


호텔에서 바라 본 양곤시:미얀마의 얼굴이자 양곤의 상징 쉐다곤 파고다

‘밍글라바 미얀마!(Mingala-Ba Myanmar)’ 

차와 사람이 뒤엉킨 오래된 거대 도시 양곤은 낯선 이방인에게 생경한 인사를 건넸다.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최신식 호텔 창 밖으로 거대한 황금탑 불빛이 보였다. 그 아래 조용히 잠든 양곤은 여전히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코끼리 같았다. 호텔에 대충 가방을 던져 놓고 미얀마 밤거리를 나섰다. 한시라도 빨리 미얀마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최신식 호텔에서 채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허름한 시골 동네가 펼쳐졌다. 허름한 동네가게에 들러 미얀마 비어를 집어 들었다. 비안마 비어를 벌꺽벌꺽 털어 넣으며 후텁지근한 미얀마 밤공기를 가슴속 깊이 들이 마셨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미얀마! 정말 보고 싶었다’ 

미얀마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4년, 어느 후텁지근한 여름 밤 쌓인 메일 함을 정리하다가 미얀마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주관하는 해외 창업 지원 교육 프로그램 홍보 메일이었다. 호기심에 바로 ‘미얀마’를 검색해보니 ‘버마, 폭탄테러, 아웅산 장군, 아웅산 수치 등’ 낯익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뭔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교육을 신청했다. 교육생이 되어 미얀마 전문가들로부터 미얀마어를 포함한 국내교육 120시간과 해외연수 80시간의 교육을 통해 미얀마에 대해 상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어렵게 미얀마 관련 서적을 찾아 공부하며 그 나라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고 보름 동안 직접 여행 후에는 그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이렇게 미얀마 땅에 다시 서게 되었다. 


한 때 버마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던 미얀마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다. 미얀마라는 이름은 '미얀+마=미얀(빠르다)+마(튼튼하다/건강하다)=빠르고 튼튼하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느릿해 보이지만 그들 속에는 미얀마라는 이름처럼 변화에 빠르고, 삶에 쫓기지 않고 인생을 관조하며 영적으로 강한 나라라는 의미일 듯하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국토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오랜 군부독재 속에 개방이 늦어져 인접 국가인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미얀마는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너무나 불편한 곳이다. 도시 곳곳은 마치 우리의 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한 촌스러움과 불편함이 가득했다. 간혹 몇몇 개발론자들은 미얀마의 경제 상황만 보고 못 사는 후진국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나라의 수준은 오로지 경제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머무는 동안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끝없는 의문이 피어 올랐다. ‘수년째 OECD 자살률 최상위 국가, 국민의 행복지수는 거의 꼴찌 수준인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행복의 기준이 결코 물질의 풍요 속에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다시 돌아가면 또 다시 수레바퀴처럼 달려 할 것을 생각하니 여행 내내 하루하루 다가오는 귀국 날짜가 공포스러웠다. 


모두 잠든 밤 노트북을 켠다. 여행 내내 가슴 속 깊이 와 닿았던 것은 미얀마의 풍광보다 그들 살아가는 모습 속에 묻어 있는 잃어버린 우리들의 순수했던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하얀 마음이 아픈 우리 사회에 치유의 백신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때 묻지 않은 미소를 간직한 미얀마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이 이 책을 통해 이 땅에도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를 몇 번의 여행으로 전부 알 수는 없다. 다 볼 수도 없고 본다 해도 그것은 미얀마의 극히 일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보고 듣고 온 것들이 미얀마의 미미한 조각에 불과할지 모르나 되도록 편견 없이 깊이 보려고 노력한 점은 알아주기 바란다. 분명한 것은 짧은 여행 동안이었지만 미얀마는 도시의 피곤에 지친 내 영혼에 치유제가 되어 주었으며, 욕망에 사로잡힌 미생의 마음에 큰 위로를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일상적인 여행지 안내를 위함이 아니다. 여행정보라면 이미 시중에 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 인터넷을 뒤져도 충분한 정보가 널려 있다. 나는 여행 내내 그들의 속살을 보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나의 발길은 주로 현지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 속에 머물렀다. 저 멀리 동남아 변방에 숨어 있는 나라 미얀마, 그 나라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 가고 있었고, 그들 삶 곳곳에 정 많고 순수했던 잃어버린 우리의 과거를 만나 반가웠다. 덕분에 글을 쓰는 내내 자연스럽게 소환되었던 내 유년시절을 만나며 행복했다. 다만 일천한 재주로 말미암아 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밍글라바 미얀마!(Mingala-Ba Myanmar)’ 평화를  빕니다.

이 글들이 작은 다리가 되길 바라며……. 


※'밍글라바'는 미얀마 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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